"피해자 처벌하는 부당한 결과…평등권·행복추구권 침해"
가해자는 징역 3년 확정…유사 기소유예 8건도 함께 취소
성폭력 피해자에 '군형법 위반' 적용한 軍…헌재서 취소
군검찰이 군내 성범죄 피해자에게 동성 간 성행위를 금지하는 군형법을 적용해 기소유예했으나 헌법재판소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취소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부사관 A씨에게 군형법 92조의6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유예한 군검사 처분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지난달 26일 취소했다.

부사관으로 일하던 A씨는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다른 부사관 B씨와 2020년 2월 자신의 숙소에서 두 차례 성적 행위를 한 혐의로 수사받았다.

B씨는 A씨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상급자였다.

군검사는 '군인 등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한 군형법 92조의6 위반 혐의를 인정해 A씨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란 혐의가 인정되지만 검사가 여러 정황을 고려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을 말한다.

형사 처벌은 면하지만 수사기관이 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한 것이어서 군인의 경우 징계 등 인사상 불이익이 따를 수 있다.

A씨는 기소유예 처분이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는 "B씨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 업무상 지휘·감독 관계에 있었다"며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B씨는 실제로 2020년 1∼3월 A씨를 폭행해 유사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법정형의 하한에 해당하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2차례 추행도 유죄가 인정됐다.

헌재는 A씨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이 "중대한 사실오인 또는 법리 오해의 잘못이 있어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에 해당하고 그로 말미암아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며 취소했다.

헌재는 "A씨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의 피해자라고 볼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B씨가 A씨의 상급자로서 업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A씨가 "공적 관계에 지장이 생기는 것이 두려워 소극적으로 응했을 뿐"이라고 진술한 점이 근거가 됐다.

아울러 "군형법 92조의6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의 피해자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는 규정이라고 볼 수 없다"며 "상명하복의 엄격한 규율과 집단적 공동생활을 본질로 하는 군대의 특성상 합의를 위장한 추행이 있었던 상황에서 실질적인 피해자를 처벌하는 부당한 결과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헌재는 같은 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이들이 제기한 헌법소원 8건을 같은 날 일제히 받아들여 검찰 처분을 취소했다.

사적 공간에서 합의로 이뤄진 동성 군인 간 성행위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본 작년 4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