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티빙', 미국 '웨이브' 잡고 날아오른 스튜디오드래곤
국내 1위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지난 3분기에 '깜짝 실적'을 냈다. 매출 2174억원, 영업이익 219억원으로 2분기(매출 1634억원·영업이익 162억원)보다 각각 33%와 34.4%씩 늘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추정한 평균치보다 매출은 360억원, 영업이익은 40억원 웃돈 수치다.

국내 콘텐츠 시장이 침체에 빠진 것은 물론 드라마 콘텐츠 부문 세계 최강인 넷플릭스도 뒷걸음질치는데, 스튜디오드래곤은 이 많은 돈을 어디서 끌어모은걸까. 비밀의 열쇠는 지난 9월 끝난 tvN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소용없어 거짓말'에 있다. 국내에선 시청률이 2~3%대에 그쳤지만, 해외 141개국에서 시청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특이한 건 '소용없어 거짓말'의 무대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콘텐츠(OTT)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드라마는 각 권역별로 '라쿠텐비키(북미·유럽 등)', '뷰(동남아시아)', '유넥스트(일본)', '프라이데이비디오(대만)' 등 로컬 OTT에 단독으로 공급됐다. 한국으로 치면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왓챠와 같은 지역 OTT들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확보한 게 '어닝 서프라이즈'를 불렀다는 얘기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에 '올인'했던 K드라마 제작사들이 각 나라의 '로컬 OTT'로 공략 대상을 넓히고 있다. 국내 드라마 내수시장이 침체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망을 다각화할 수 있는데다 수익성 제고·지적재산권(IP) 확보까지 '일석삼조'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다.

◆3년 새 K드라마 가격 3배↑

태국의 '티빙', 미국 '웨이브' 잡고 날아오른 스튜디오드래곤
스튜디오드래곤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기준 전체 매출의 76.6%(약 1665억원)는 해외에서 나왔다. 2021년 35.1%, 지난해 56.1%였던 걸 감안하면 3년째 21%포인트씩 오른 셈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은 그 이유를 '로컬 OTT'로 설명한다. 라쿠텐비키, 뷰, 유넥스트 등 각 권역별 OTT에 판매하는 드라마 계약 단가가 높아진 덕분이어서다. 스튜디오드래곤 관계자는 "로컬 OTT에 판매한 신작 드라마 평균 판매 단가가 최근 3년 새 3배 넘게 올랐다"고 말했다.
태국의 '티빙', 미국 '웨이브' 잡고 날아오른 스튜디오드래곤
이렇게 장르별로 '타깃 시장'을 세분화하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로맨스 코미디 장르가 대표적이다. 스튜디오드래곤 관계자는 "동남아에선 '한국 로맨스 코미디는 믿고 본다'는 인식이 있다"며 "이런 장르를 동남아 로컬 OTT에 공급하면 다른 플랫폼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고 했다. 올 들어서 스튜디오드래곤은 퓨전 사극 '청춘월담'(2월), 법정물 '이로운 사기'(5월) 등을 이런 방식으로 공급했다.

스튜디오드래곤뿐만이 아니다. 그룹에이트와 판타지오가 만든 로맨스 드라마 '오늘도 사랑스럽개'도 해외에선 라쿠텐비키, 뷰, 유넥스트를 통해 공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SLL의 '재벌집 막내아들'도 국내에선 넷플릭스·티빙 등을 통해 공급했지만, 해외 방영권은 라쿠텐비키에 넘겨줬다.

◆"해외시장 개척만이 살 길"

국내 드라마 제작사들이 해외 로컬 OTT 잡기에 나선 건 내수시장 침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드라마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늘어나는데 광고는 줄어들다보니 지상파 3사는 드라마 제작 편수를 줄이고 있다. 아직 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티빙·웨이브 등 토종 OTT들에게 드라마는 버거운 숙제다. 국내 드라마 공급 편수가 지난해 135편에서 올해 115~120편(웹드라마 제외)으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은 이래서 나온다.

그러니 제작·투자사에게 해외시장 개척은 '안하면 죽는' 생존의 문제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 대형 OTT에만 의존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IP 독점' 때문이다. 이들 플랫폼한테 투자를 받아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 경우, 드라마가 대박을 쳐도 제작사 수익은 얼마 안된다. 제작사가 아닌 OTT가 IP와 판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재주는 제작사가 부리고, 돈은 플랫폼만 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태국의 '티빙', 미국 '웨이브' 잡고 날아오른 스튜디오드래곤
반면 이렇게 권역별로 로컬 OTT와 계약을 맺으면 제작사가 계속 IP를 가질 수 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로컬 OTT로 공급망을 다각화하면 특정 OTT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 수익 안정성을 추구할 수 있고, 굿즈 등 2차 창작물 등을 통한 추가 수익도 벌어들일 수 있다"고 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