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맨션' 등 단편 8편 수록
'집'에 얽힌 현실적 이야기…김혜진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의 단편소설 '목화맨션'의 주인공 만옥과 순미는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지만 곤궁하기는 마찬가지인 처지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끼니를 챙기고 이웃으로서 도움을 건네며 살갑게 지낸다.

하지만 상황이 어려워지자 만옥은 순미에게 가능한 한 빨리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한다.

순미는 그런 만옥에게 계약 기간까지 살겠다면서 맞서고, 두 사람이 서로를 속속들이 알며 가깝게 지낸 8년이라는 세월은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서 희미해지고 만다.

또 다른 단편 '산무동 320-1번지'의 '호수 엄마'는 여러 채의 건물을 소유한 장 선생 대신 세입자들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두 달 치 밀린 월세를 독촉하고 나서도 집에 가던 발길을 되돌려 얼마 전 모친상을 당한 세입자에게 조의금을 전하기도 하지만, 세입자들에게 월세를 받아내겠다는 의지는 더 굳세진다.

'축복을 비는 마음'은 소설가 김혜진의 세 번째 단편집이다.

2021년과 2022년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목화맨션'과 '미애', 2022년 김유정문학상 후보작 '축복을 비는 마음' 등 동시대인들의 '집'에 관해 고민하며 쓴 8편의 이야기를 엮었다.

작가는 재개발을 앞둔 쇠락한 동네의 현실, 빌라 투자를 위해 달동네를 돌아다니는 여성 등 우리 주위의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자산이나 상품으로서의 집이 주거와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을 압도하는 한국 사회에서 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설 속 이야기들은 계급, 지역, 세대, 젠더를 넘나들며 충돌과 갈등으로 이어진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일들에는 전세 사기, 기혼 유자녀 여성의 우울증, 청년 니트족(교육과 직업훈련을 받지 않은 무직자) 문제 등 현실 속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녹아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의 팍팍한 현실에서도 희망은 있다.

표제작 '축복을 비는 마음'에선 청소 일을 하는 두 여성 경옥과 인선이 등장한다.

이들의 이야기에선 처음엔 낯설고 불편한 사이로 만났지만 힘겨운 생업을 함께 하며 싹트는 정과 신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경옥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집을 청소할 땐 마음이 너무 불행해지지 않느냐"고 묻자 인선은 이렇게 답한다.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하는 거죠, 뭐. 깨끗하게 청소해드리는 만큼 좋은 일 많이 생기시라고 빌어주는 거죠."(270쪽)
'작가의 말'에서 김혜진은 "어떤 시절에 내가 머물렀던 집들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단련시키며 기꺼이 나의 일부가 되었다"면서 "이 책은 집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집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했다.

문학과지성사. 292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