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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기업인의 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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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기업인의 수염
    “다음 인물들의 수염 중 누가 가장 멋진가.”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이 정보기술(IT)업계 거물들의 사진을 걸고 이처럼 뜬금없는 순위를 매긴 적이 있었다. 2008년이다. 2000년대 중후반 실리콘밸리 임원들 사이에 수염 열풍은 그만큼 거셌다. 스티브 잡스(애플 창업자), 래리 엘리슨(오라클 창업자), 스튜어트 버터필드(슬랙 창업자) 등 내로라하는 IT업계 거물들이 너도나도 수염을 기르던 시절이다. 수염은 ‘창의성’ ‘전문성’을 의미했고, 경영자에겐 ‘소탈함’과 ‘카리스마’의 상징이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수염을 처음 기른 것도 2006년, 카카오를 처음 꾸릴 때였다. 김택진(엔씨소프트 창업자), 송재경(넥슨 공동창업자) 등 국내 IT업계 거물들도 이즈음 수염투성이 얼굴로 활보하고 다녔다.

    한국에서 수염의 후광 효과는 의외로 강렬하다. 일반 직장에선 좀처럼 허용되지 않다 보니 수염을 기르면 일단 ‘자유로운 영혼’이거나 조직에서 ‘웬만큼 높은 사람’을 의미한다. 정치인들에겐 곧잘 쓰이는 소품이다. 대통령 선거 출마를 앞두고 고뇌할 때는 수염을 기르는 게 다반사였다. 2016년 일선에서 물러나 네팔을 둘러봤던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민생 탐방에 나섰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그런 사례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도 칩거할 때는 관행처럼 덥수룩한 모습을 보였다.

    수염의 효과 만큼 이를 깎는 행위가 주는 상징성도 크다. ‘쇄신’이자 ‘결단’이며 ‘부활을 위한 자기 파괴’다. 정치인이 출마 선언을 할 때나, 운동선수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수년간 길러온 수염을 미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다.

    김범수 창업자도 면도하고 17년 만에 말끔해진 얼굴로 공식 석상에 섰다. 카카오 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하자 경영 쇄신을 직접 지휘하기로 했다. 카카오의 성장과 함께해 온 수염을 깎는 게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카카오의 자율 경영과 그의 은둔형 스타일을 구현한 하나의 상징처럼 인식됐기 때문이다. 김 창업자는 이제 카카오의 경영 관행을 싹 바꾸겠다고 했다. 맨얼굴로 돌아간 그의 작심이 얼마나 통할지, 카카오가 얼마나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고경봉 논설위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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