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컷 캠페인을 전개하는 여성들. / 사진=엑스(옛 트위터) 캡처
숏컷 캠페인을 전개하는 여성들. / 사진=엑스(옛 트위터) 캡처
편의점 여성 아르바이트생이 머리카락이 짧다는 이유로 20대 남성으로부터 무차별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공분한 여성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여성 숏컷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어 화제다.

6일 엑스(옛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여성들이 해시태그 '#여성_숏컷_캠페인'을 달고 자신의 짧은 머리카락, 이른바 '숏컷'을 인증하는 게시물들이 폭발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관련 게시물은 엑스에서만 전날부터 약 5000건이 넘게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캠페인은 전날 편의점 여성 아르바이트생이 숏컷을 이유로 무차별 폭행당했다는 언론 보도가 알려지자, 일부 여성들이 이에 분노하면서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은 "머리카락이 짧다고 폭행당할 수 있다는 현실은 말도 안 된다", "머리카락 짧으면 맞아야 하나", "여자가 숏컷 하면 안 된다는 건 무슨 논리냐", "장발 남자도 문제가 되는 건가"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양궁 안산 선수. / 사진=연합뉴스
양궁 안산 선수. / 사진=연합뉴스
숏컷 캠페인은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 당시 짧은 헤어스타일을 선보인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가 일부 남성 네티즌들로부터 '페미니스트'라고 비판받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네티즌들은 안 선수에게 "여대에 숏컷. 페미 조건을 갖췄다", "여대 출신 숏컷은 90% 이상 확률로 페미다" 등의 주장을 펼쳤다.

무분별한 추측과 비난이 이어지자 신체심리학자 한지영씨는 트위터에 글을 올려 "여성 국대 선수 헤어스타일로 사상 검증이라"고 지적하면서 "우리 여성 선수 선전을 기원하며 #여성_숏컷_캠페인 어떤가요. 바야흐로 숏컷 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숏컷 캠페인을 제안하고 나섰다.

정치인과 방송인들도 캠페인에 참여하거나 응원하면서 힘을 실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과거 숏컷 사진을 올리며 "페미 같은 모습이란 건 없다. 우리는 허락받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같은 당 심상정 의원도 트위터를 통해 "그 단호한 눈빛으로 세상의 모든 편견을 뚫어버리라"며 "안산 선수의 당당한 숏컷 라인에 함께 서서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배우 구혜선은 인스타그램에 "숏컷은 자유^^"라는 글과 함께 짧은 머리를 한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게재하며 캠페인에 동참했다.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도 자신의 숏컷 사진을 올리며 "너무 열이 받아서 올려본다. 숏컷이 왜?"라고 반문했다. 이 캠페인에는 당시 수만명이 동참했다.
숏컷 캠페인에 참여했던 류호정 정의당 의원(왼쪽), 배우 구혜선. / 사진=SNS
숏컷 캠페인에 참여했던 류호정 정의당 의원(왼쪽), 배우 구혜선. / 사진=SNS
영국 BBC 방송은 당시 안산 선수의 숏컷 논란과 관련 "한국 여성들의 '숏컷'은 사회적 변화를 열망하는 움직임"이라는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BBC는 '한국 여성들은 왜 숏컷을 주장하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짧은 머리를 한 안산 선수가 '페미니스트'로 낙인찍혀 온라인에서 무차별 공격을 받았으며, 이를 옹호하는 '숏컷 캠페인'이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알리면서 이렇게 분석했다.

BBC는 숏컷 논란이 한국 젊은 남성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촉발된다며 동기가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이라고 주장했다. 남성들의 단적인 사례로 BBC는 한 네티즌이 올린 글을 소개하기도 했다. 게시물에는 "금메달을 따서 좋지만, 머리가 짧아 페미니스트 같다. 페미니스트라면 지지를 철회한다. 모든 페미니스트는 죽어 마땅하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한편, 경찰에 따르면 20대 남성 A씨는 지난 4일 새벽 진주시 하대동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던 20대 여성 B씨를 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로에 놓였다.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진 A씨는 B씨가 '머리카락이 짧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등 폭행했다. 말리려던 50대 손님 C씨도 여러 차례 폭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A씨는 가게에 비치돼 있던 의자를 사용해 가격하기도 했다. A씨의 폭행으로 B씨는 염좌, 인대 손상 등을 입고 귀 부위를 다쳤다. C씨는 어깨와 안면부에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범행 당시 B씨에게 "머리가 짧은 걸 보니 페미니스트"라며 "나는 남성연대인데 페미니스트는 좀 맞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