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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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급락하면서 관련 투자를 한 '개미'(개인 투자자)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원유 개미의 베팅은 '상승 방향'이었는데 실제 유가가 반대로 움직이면서 평가손실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은 KODEX WTI원유선물(H) 상장지수펀드(ETF)를 지난달 119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어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상장지수증권(ETN)을 78억원어치 담았고 삼성 블룸버그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22억원),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20억원) 등도 수십억원어치씩 사들였다.

유가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상품은 순매도 우위였다. KODEX WTI원유선물인버스(H) ETF은 158억원어치 순매도했고 미래에셋 인버스 2X 원유선물혼합 ETN(H)(-78억원), 신한 블룸버그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77억원), TIGER 원유선물인버스(H) ETF(-29억원), 삼성 블룸버그 인버스2X WTI원유 선물 ETN(-22억원) 등도 많이 팔았다.

원유 개미가 유가를 2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을 많이 담고 유가를 거꾸로 추종하는 인버스 상품을 많이 팔아치운 건 국제 유가가 당분간 반등 국면을 이어갈 거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는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연말 내내 국제유가 불안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지난달 23일 한 증권사는 리포트를 통해 "이스라엘·하마스 간 군사적 충돌을 비롯해 유대교와 이슬람교 사이에서 고조되고 있는 종교 갈등은 유가가 하락을 막는 원인이 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90달러선에 달하는 고유가 환경이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감산 영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13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사우디와 미국의 상호방위협정 체결도 불투명해졌고, 이에 따라 사우디가 내년에 원유 생산을 다시 늘릴 유인이 사라졌다"며 "사우디의 감산 기조가 내년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고 러시아도 이에 동조하면서 원유시장의 타이트한 공급 여건이 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지난달 월간 단기전망보고서(SFO)를 통해 내년 WTI와 브렌트유 가격 전망을 각각 90.91달러, 94.91달러로 제시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상황이 반전됐다. WTI 배럴당 가격은 지난달 19일 89.37달러를 찍은 뒤 9.23% 급락해 1일 오전 11시(한국시간) 현재 81.12달러에 거래 중이다. 하마스가 수일 내로 외국인 인질 일부를 석방하겠다고 밝히면서 중동 지역에서의 확전 우려가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미국 원유 생산량이 역대 최대 규모인 하루 1305만배럴을 기록하는 등 미국에서 견조한 증산 흐름이 보이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광래 삼성선물 수석연구원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실제 원유 공급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수에즈 운하 가동 중단, 이란의 직접적인 참전 중 하나가 현실화해야 한다"며 "수에즈 운하는 가자지구에서 100㎞ 이상 떨어져 이집트 해역과 국경 안쪽에 있는데 이집트로의 확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의 직접 참전도 실익과 명분이 빈약해 가능성이 작다"고 전망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