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가 6개월 이하인 은행 단기예금 잔액이 반년 새 1조원 넘게 늘었다. 연 4%대로 올라선 예금금리가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가 커지면서 금융 소비자들이 예금 만기를 짧게 설정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내년 초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금융권 정기예금 규모가 100조원에 달하는 가운데 은행들이 단기예금 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자금 조달에 나선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6개월 만기 예금금리 인상

"금리 더 오른다"…단기예금에 뭉칫돈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24일 기준 만기 6개월 이하 개인 정기예금 예치액은 21조8232억원으로 집계됐다. 6개월 전인 4월 말(20조5509억원)에 비해 1조2723억원 증가했다.

만기가 짧은 예금에 자금이 몰리는 것은 최근 은행들의 주요 정기예금 최고 금리가 연 4%를 넘어서는 등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어서다. 시장금리에 영향을 주는 미국 국채 10년 만기 금리가 최근 연 5%를 웃도는 등 고금리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자금을 ‘짧고 굵게’ 굴리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기예금은 시장 상황에 따라 자금을 유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더 높은 금리의 상품이 나오면 쉽게 갈아탈 수 있어 금리 인상기에 수요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은행들이 만기가 짧은 단기예금 금리를 올리고 있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통상 예금은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아지지만 은행권에서는 최근 만기 6개월 예금금리가 1년 금리를 추월하는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날 국민은행 ‘KB 스타 정기예금’ 6개월 만기 금리는 연 4.08%로 1년 만기 금리(연 4.05%)보다 높다. 농협은행 ‘NH올원e예금’ 금리도 만기 6개월짜리가 연 4.05%로 1년 금리(연 3.95%)를 뛰어넘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도 대표 정기예금 금리를 6개월과 1년짜리를 같은 연 4.05%와 연 4%로 책정했다.

인터넷전문은행도 단기예금을 중심으로 수신금리를 올리고 있다. 케이뱅크는 지난달 만기 6개월 정기예금 상품 금리를 연 3.9%에서 연 4%로, 만기 3개월 금리는 연 3.5에서 연 3.8%로 인상했다. 카카오뱅크도 6개월 미만 예금금리를 연 3.2%에서 연 3.4%로, 6개월 이상 1년 미만 금리를 연 3.3%에서 연 3.6%로 상향 조정했다.

○단기 자금 조달 확대

은행권이 6개월 이하 단기예금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작년 말 고금리 예금으로 끌어온 자금을 재유치하기 위해서다. 은행들은 지난해 9월 말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자금시장 경색으로 은행채 발행이 어려워지자 자금 조달을 위해 예금금리를 연 4~5%대 수준으로 높여 대응했다. 작년 4분기 은행권에서 판매된 1년 이상 2년 미만 정기예금 규모는 37조원에 이른다.

금융권에선 만기가 다가오는 고금리 예금을 은행들이 만기가 짧은 상품으로 분산해 다시 끌어오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보고 있다. 6개월짜리 단기예금 금리를 높이면 시장 상황을 관망하려는 소비자들이 단기 상품에 자금을 다시 넣어둘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 시중은행 수신담당 임원은 “작년 말처럼 연 5%가 넘는 금리로 1년 이상 장기예금을 통해 자금을 유치하면 조달비용이 치솟아 은행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은행채 금리가 오르고 있는 점도 금리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만기 6개월 이하 단기예금 금리는 은행채 금리를 따라가는 경향이 짙다. 지난 24일 기준 은행채(AAA·무보증) 6개월물 금리는 연 4.046~4.065%로, 6개월 전보다 상·하단 금리가 약 0.5%포인트 뛰었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