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1번가 주인' SK스퀘어, 큐텐 '공동 경영' 추진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11번가의 모기업인 SK스퀘어와 싱가포르 e커머스 플랫폼 업체인 큐텐이 ‘공동 경영’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11번가와 큐텐을 합병한 뒤, SK스퀘어가 존속 법인인 큐텐의 주요 주주로 올라서는 방식이다. SK스퀘어가 아마존과 전략적 제휴 관계고, 큐텐이 일본 인도 등 아시아에 여러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협상 결과에 따라 국내 유통산업에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협상 새 국면 전환된 11번가 인수전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와 큐텐 양사는 각자의 자문사도 배제한 채 막판 협상을 진행 중이다. G마켓 창업자이자 큐텐의 최대 주주인 구영배 사장과 SK스퀘어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하형일 11번가 대표가 담판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독] '11번가 주인' SK스퀘어, 큐텐 '공동 경영' 추진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11번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11번가 주요 부서에 대한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상의 핵심 의제는 공동 경영이다. SK 측은 11번가와 큐텐을 합병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큐텐 주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큐텐을 공동 경영하자는 의미다.

이 같은 거래는 큐텐이 티몬, 위메프를 인수할 때 사용했던 거래 구조와는 차이가 크다. 티몬, 위메프 매각은 각각 두 회사에 투자한 주요 재무적투자자(FI)인 앵커파트너스와 IMM인베스트먼트가 주도했다. 이들은 티몬과 위메프의 IPO(기업공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이때 구세주로 등장한 인물이 구영배 사장이다. G마켓을 나스닥에 상장시킨 경험이 있는 구 사장은 티몬과 위메프 경영권을 넘겨주면, 이에 대한 댓가로 큐텐 지분을 앵커파트너스, IMM인베스트먼트 등에 나눠주기로 했다. 큐텐을 나스닥에 상장시킴으로써 FI를 비롯해 티몬, 위메프의 창업자에게도 탈출구를 열어주고, 큐텐그룹은 외형을 키우는 ‘영리한 거래’였다. 그동안 큐텐의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 지분을 나눠준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네이버, 쿠팡 위협하는 새로운 강자의 등장?

큐텐은 SK스퀘어측에도 앞서의 방식을 제안하며 접근했다. 탈출구를 제공할 테니 경영에선 빠지라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SK스퀘어는 11번가를 헐값에 처분하는 것이 아니라 큐텐그룹과의 전략적 제휴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됐다. IB업계 관계자는 “SK스퀘어가 큐텐 지분을 받고, 나스닥 상장까지 성공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MM인베스트먼트가 큐텐에 5000억원을 추가 투자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도 큐텐의 잠재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현재의 객관적인 형세만 본다면 큐텐이 협상의 우위에 서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다. SK스퀘어는 2018년 나일홀딩스로부터 5000억원의 투자금을 받았다. 11번가의 지분 18.18%(작년 말)를 보유하고 있는 나일홀딩스는 11번가의 IPO가 약속된 시한 내에 실패할 경우 11번가의 경영권을 포함해 보유 지분을 동반 매각할 수 있는 권한(드래그 얼롱)을 갖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약속한 기한이 올해 9월 말까지였다”며 “투자자에 지연 이자까지 지급해야 할 SK스퀘어로선 대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큐텐 쪽에서도 11번가는 놓치기 아까운 대어다. 11번가를 품을 경우 큐텐은 국내 e커머스 시장에서 유의미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지위에 올라설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티몬과 위메프의 거래금액은 각각 3.8조원, 2.4조원에 불과하다. 큐텐 군단 중 하나인 인터파크커머스의 거래액은 7000억원에 머물렀다. 3개 회사를 합해도 7조원에 못 미치는 규모다.

아마존의 참전 여부도 '관심'

쿠팡과 네이버쇼핑이 지난해 각각 36.8조원, 35조원의 거래액을 창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까지 큐텐 군단의 영향력은 ‘찻잔 속의 태풍’ 수준이다. 하지만 11번가와 힘을 합칠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11번가의 지난해 거래액은 10.5조원으로 시장 점유율은 7%였다. 11번가까지 합산한 큐텐의 거래액은 G마켓(15.2조원)을 넘어서 단숨에 3위로 올라서게 된다.

구영배 사장이 협상의 끈을 놓치고 있지 않은 건 단순히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11번가를 품으면 큐텐은 SK그룹이라는 든든한 후원군을 얻을 수 있다. SK그룹 입장에서도 통신(이동통신), 모빌리티(티맵)의 강점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e커머스와의 연계가 필수다.

SK그룹과 아마존이 전략적 제휴 관계라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SK스퀘어와 큐텐의 전략적 제휴가 현실화한다면 아시아에서 유독 힘을 못 쓰고 있는 아마존도 그동안 미뤘던 한국 투자를 실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