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9일 예술의전당…데시레 랑카토레와 함께 주인공 노르마 역
지휘자 아바도 "벨리니의 정교한 걸작…오늘날 세계와도 닮은 이야기"
오페라 '노르마' 여지원 "감정 억누르며 인물 내면의 힘 노래"(종합)
오페라 '노르마'를 대표하는 아리아 '정결한 여신이여'(Casta Diva)는 고난도 기교로 내로라하는 소프라노들도 진땀을 빼는 곡이다.

주인공 노르마가 등장해 처음 부르는 곡으로 아름다운 멜로디에 여사제의 카리스마와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담아야 한다.

오는 26∼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는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프로덕션의 '노르마'에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소프라노 여지원(43)이 노르마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탈리아 성악가 데시레 랑카토레도 같은 역에 더블캐스팅 됐다.

여지원이 서울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교 2학년 때 성악을 시작한 그는 서경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무명의 동양 소프라노였던 그는 2015년 세계 최고의 여름 음악축제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에게 깜짝 발탁돼 '에르나니'의 엘라비 역으로 데뷔했다.

이후 여지원은 '무티의 프리마돈나'라고 불리며 성악가로서 행보를 넓혔다.

2017년에는 세계 최정상 소프라노인 안나 네트렙코와 함께 '아이다'의 아이다 역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초대됐고, 2018년에는 미국 시카고 심포니와 '레퀴엠'을 공연했다.

2019년에는 독일 바덴바덴 페스티벌에서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노래했다.

현재는 이탈리아에 거주하며 유럽 주요 극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지원은 1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탈리아 오페라의 정수라고 불리는 '노르마'로 한국에서 노래할 수 있어 기쁘다"고 이번 무대에 서는 소감을 밝혔다.

사실 '노르마'는 1831년 12월 밀라노에서 초연된 이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화제작이지만, 소프라노에게 고난도 가창력이 요구되는 작품이어서 20세기에 들어서는 자주 무대에 오로지 못하고 있다.

지휘를 맡은 로베르토 아바도도 "캐스팅 어렵다.

적합한 가수가 없다면 안 하는 게 나은 작품"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노르마는 드루이드교를 이끄는 갈리아 지방의 여사제로 정결을 요구받지만,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하는 복잡한 인물이다.

연출을 맡은 알렉스 오예는 "노르마는 굉장히 비비드(vivid)한 캐릭터"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여지원은 "노르마는 감정을 억제하며 노래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며 "굉장히 어려운 역할"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이탈리아 오페라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감정을 폭발시키는 드라마틱한 역을 주로 맡아왔다고 고백했다.

지금까지 그가 맡은 역으로는 '일 트로바토레'의 레오노라, '코지 판 투테'의 피오르딜리지, '나비부인'의 초초상, '멕베스'의 레이디 멕베스, '투란도트'의 류, '아틸라'의 오다벨라, '라 보엠'의 미미, '오텔로'의 데스데모나 등이 있다.

여지원은 "노르마는 민족과 종교의 지도자이기에 인간적인 감정을 버려야 한다.

하지만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배신당하며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다"며 "감정을 억누르면서 내면에 있는 강한 힘을 표현해야 노르마의 권위가 산다"고 말했다.

특히 노르마가 부르는 '정결한 여신이여'는 숭고한 사제이면서 용감한 전사, 나약한 여인인 노르마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대목이다.

여지원은 "노르마의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곡"이라며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누르고 평화로운 듯 부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오페라 '노르마' 여지원 "감정 억누르며 인물 내면의 힘 노래"(종합)
랑카토레 역시 노르마 역에 대해 "높은 기교를 선보이는 동시에 한 여성으로서 노르마의 내면도 보여주려고 한다"며 "이 작품은 연인에게 배신당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야기다.

이런 부분에 포인트를 뒀다"고 말했다.

아바도는 이 작품을 "(작곡가) 벨리니의 걸작"으로 꼽았다.

아바도는 "'노르마'에는 벨칸토 오페라의 초기의 로맨틱한 면도 있고, 클래식한(고전적인) 면도 함께 갖고 있다"며 "굉장히 웅장하고, 광범위한 (음악의) 범위를 보여준다.

후대 작곡가들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찌 보면 지루할 수 있는 레치타티보(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의 창법)도 아주 정교하고 명확하게 표현돼 있다"고 설명했다.

'노르마'는 성악가에게 기교적으로 어려운 작품이지만 관객에게는 이해하기 쉽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작품이다.

종교, 사랑, 죽음 등의 소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인물들의 감정변화가 변화무쌍하게 흘러간다.

알렉스 오예의 연출로 극의 배경과 결말도 현대적으로 재해석됐다.

여지원은 "노르마가 겪는 감정의 혼란을 쭉 따라가면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며 "노르마는 화를 내기도 하고, 아침드라마에서 볼법한 삼각관계에 빠지기도 한다.

우정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지루할 틈이 없다"고 말했다.

아바도는 "서로 다른 종교가 더 힘이 큰 쪽의 침략을 받고, 군사적인 지배가 이뤄지는 내용이 나온다.

옛날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도 닮아있다"고 덧붙였다.

오페라 '노르마' 여지원 "감정 억누르며 인물 내면의 힘 노래"(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