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부터 해외 큐레이터까지 잇단 조문…윤 대통령 조화 보내
"한국 미술사 순수한 욕심쟁이"…"추상미술 정착시키고자 노력"

14일 박서보(본명 박재홍) 화백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는 미술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묘법' 연작으로 한국 화단의 단색화 흐름을 이끈 대가의 타계 소식에 조문 첫날부터 추모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영정 속 고인은 넉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새 작업에 눈빛 반짝이던 스승"…故 박서보 빈소에 추모 행렬
이들이 기억하는 박 화백은 우리나라 미술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선배였다.

빈소에서 만난 고인의 제자 최명연 전 홍익대 교수는 "1962년 대학교 2학년 때 파리에서 막 돌아온 박 선생님을 만났다"며 "콧수염을 기르고 '당꼬바지'(밑단이 홀쭉한 형태의 바지)를 입은 채 나타나 '10년 안에 여기서 작가가 나오면 장을 지지겠다'고 하시며 학생들을 고무시킨 것이 기억난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이미지가 강할지 몰라도 기억력도 탁월하고 상당히 섬세하셨던 분"이라고 덧붙였다.

"새 작업에 눈빛 반짝이던 스승"…故 박서보 빈소에 추모 행렬
이열 홍익대 교수는 "6·25 이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가 힘든 상황에서도 추상미술을 정착시키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며 "혼자만의 작업 세계를 이룩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 차원의 움직임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김용대 전 이화여대 교수는 "(박 화백은) 예술에 있어서는 한국 미술사에 100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순수한 욕심쟁이"라며 "우리 미학의 근원적인 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이강소 작가도 "미니멀한 국제적인 조류를 나름대로 해석해서 형식을 도출해낸 작가"라며 "후배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셨다"고 기억했다.

"새 작업에 눈빛 반짝이던 스승"…故 박서보 빈소에 추모 행렬
누구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었다.

박 화백의 제자였던 김영순 전 부산시립미술관장은 "누구보다 이타적이었던 작가였다"며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후배, 제자들을 동참시키려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아직 우리 미술계에 제대로 된 갤러리가 없을 때 화가이자 기획자, 해외 미술 교류의 교량 역할까지 적극적으로 하셨다"고 강조했다.

김 전 관장은 지난해 12월 마지막으로 고인을 만났을 때 새 작업을 시작한다며 눈빛을 반짝이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해외 큐레이터들도 이날 빈소를 찾았다.

프랭크 보엠 독일 스튜디오 보엠의 큐레이터는 "4∼5년 전 독일에서 큰 전시가 열렸을 때 박 화백을 처음 만났다"며 "그는 떠났지만 그의 놀라운 작품들은 계속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조화환도 빈소 곳곳에 배치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이 조화를 보내 조의를 표했다.

유재석, 김희선, 오은영 등 문화계 인사들의 조화도 눈에 띄었다.

박 화백의 추모식은 16일 진행된다.

발인은 17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 성남시 분당 메모리얼 파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