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한 뮤지컬 작품 수가 지난해 5개에 달했다. 웬만한 베테랑 배우가 아니고서는 소화하기 힘든 물량이다. 일부 작품은 대극장 무대에 올랐다. 그것도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깐깐하기로 유명한 예술의전당 무대였다. 뮤지컬을 오래 한 원숙한 배우 얘기가 아니다. 뮤지컬에 데뷔한 지 만 2년이 채 안 된 원태민 배우 얘기다.원태민은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기자와 만나 "특출난 능력보다는 '노력파'라는 기질이 만들어 낸 결과"라며 "한창 많이 할 때는 하루 연습 시간이 12시간을 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모습을 좋게 평가한 뮤지컬 스태프들 덕에 좋은 평판이 생겼고, 그 영향으로 작품 출연 제안을 연달아 받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원태민이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지망한 건 아니다. 그는 당초 남들처럼 평범하게 공부하는 길을 걸었다. 대구에서 1993년 태어난 그는 성균관대 기계공학과에 2013년 입학하며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배우로서의 '운명'은 예상치 못하게 입대와 함께 다가왔다. 키가 컸던 덕에 그는 군 의장대로 차출됐고, 여기서 배우 지망생들과 함께 군 생활을 한 게 영향을 미쳤다.원태민은 "의장대에 키가 큰 사람이 많다 보니 배우 지망생이 많았다. 그들을 보며 '나도 배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군 복무를 하며 입시를 준비해 전역을 3개월 앞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에 합격했다"고 했다. 기존에 다니던 대학은 자퇴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동경했지만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며 "우연히 주어진 기회를 노력으로 붙잡았다"고 했다.원태민은 필모그래피는 2024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떠나온 곳보다 약 1.5배 큰 경기도 양평에서의 시간이 미끄러져 흐른다. 도심의 그 모든 소음이 낙엽 속에서 침묵하고, 긴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온전히 전해진다. ::서후리의 서후리숲시린 공기 내려앉은 마을 언덕길을 오른다. 길은 서후1리에서 서후2리로, ‘서후리숲’이란 이름을 지명에서 따온 것도 알아차린다. 욕심 없이 담백한 이름은 숲과 닮았다. 숲에는 오직 숲뿐이다. 건너온 마을도 보이지 않는다.매표소에서 8000원의 입장료를 지불하자, 작은 안내 책자와 함께 간단한 설명도 건네진다. 서후리숲은 사유림으로 약 30만 평의 부지 중 10만 평 규모가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잣나무와 단풍나무, 메타세쿼이아숲, 층층나무, 자작나무, 참나무, 백합나무가 어우러져 어우러진 A코스는 약 1시간, 노약자도 쉽게 돌아볼 수 있는 침엽수림 B코스는 약 30분이 소요된다.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흐르는 연못은 숲 곳곳에서 졸졸졸, 이방인을 따른다. 잣나무 숲에 퍼진 은은한 솔향 냄새를 맡으며, 겨울 색 짙은 숲길을 걷는다. 붉은 잎 떨어진 단풍나무숲은 융단 길이 되었고, 하얀 나무줄기가 군락을 이루는 자작나무 숲은 바람결에 사각이는 나뭇잎 소리 쉼이 없다.한겨울에도 숲은 춥지 않다. 여느 계절보다 붐비지 않아도 외로운 마음이 깃들지 않는다. 숲이 날 사랑하는구나 깨닫는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오즈번 윌슨은 이러한 감정을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바이오필리아는 인간이 자연과 생명체에 대해 본능적으로 느끼는 애착과 사랑을 의미한다.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숲, 물, 바람 같은 자연환경 속에서 진화해왔다. 빛의 변화를 느끼
선한 눈망울과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고(故) 안성기의 영정 사진은 1987년, 그가 서른 아홉 살이던 해 연세대 신촌 캠퍼스에서 찍은 사진이다.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 촬영장에서, 사진작가 구본창이 기록했다.구본창 작가와 안성기 배우는 1982년 처음 만났다. 역시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 촬영장에서였다. 독일 유학 중이던 구본창 작가가 잠시 한국에 들어와 친구였던 배창호 감독의 일터를 찾아간 게 인연이 됐다. 이후 구본창 작가는 안성기 배우의 모습을 여러 차례 카메라에 담았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감춰지지 않던 그의 깊고도 고요했던 순수함을 구본창 작가는 흑백 사진으로 남겼다. 영정사진을 미처 마련하지 못했다는 유가족의 연락을 받고, 요며칠 구본창 작가는 과거의 사진들을 모두 꺼내보았다. 그중 고인의 부인인 오소영 씨가 가장 좋아했던 사진이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게 되었다. "인생의 유한함을 뼈저리게 느낀다"는 구본창 작가가 40년이 넘은 고인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아르떼에 공개한 그 시절의 안성기를, 지금 다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