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WB)이 올해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가 5.0% 성장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50년 만의 최악의 성적이다.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경기 둔화다. WB는 내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4.4%로 제시하며 기존 예상치보다 0.4%포인트 끌어내렸다. 중국발 악재로 역시 내년에도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성장세가 약해질 것으로 봤다.

“中 내년 4.4% 성장 그칠 것”

세계은행, 中침체 경고…내년 성장률 확 낮췄다
WB는 2일 발표한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 전망 반기 보고서에서 이 지역 경제가 올해와 내년 각각 5.0%, 4.5%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 내놓은 전망치(올해 5.1%, 내년 4.8%)보다 내려 잡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아시아 금융위기, 석유 파동 등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1960년대 후반 이후 50년 만에 가장 둔화한 성장세”라고 짚었다.

중국의 경기 침체가 주된 요인으로 지적된다. WB는 올해 중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과 동일한 5.1%로 유지했다. 그러나 내년 전망치는 4.8%에서 4.4%로 낮췄다. WB는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에 따른 경제 반등 효과가 미미한 데다 막대한 부채 부담, 부동산 시장 악화 등 요인이 중국의 성장을 짓누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WB는 중국 경제가 1% 쪼그라들 때마다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 GDP 증가율이 0.3%포인트씩 하락한다고 보고 있다.

WB는 특히 중국 태국 베트남 등에서 정부·기업 부채가 모두 급증하는 데 주목했다. 각국 정부가 여기에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면 민간 투자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 WB는 GDP 대비 일반 정부 부채 비율이 10%포인트 오르면 기업 투자가 1.2%포인트 떨어진다고 추산한다.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은 다른 신흥국 대비 가계 부채 규모도 상당하다. 가계의 빚 부담이 커지면 부채 상환 비용이 늘기 때문에 소비 지출이 줄어든다.

“IRA 도입 후 대미 수출 급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등장으로 글로벌 무역의 판도가 바뀐 점도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에 악재가 됐다는 분석이다. 이들 국가는 미·중 갈등 악화와 이에 따른 관세 전쟁으로 대체 투자처로서의 수혜를 톡톡히 누려왔다. 대표적인 곳이 대만 베트남 등이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자국 제조업 부활을 위해 보호무역주의 성격의 정책을 잇달아 도입하면서 이들 국가의 대미(對美) 수출은 급격히 감소했다. WB에 따르면 작년 8월 IRA와 반도체법(CHIPS Act) 발효 이후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등의 전자제품·기계 수출량이 일제히 고꾸라졌다. 반면 IRA에 따른 보조금 혜택이 주어지는 캐나다 멕시코와의 교역량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디트야 마투 WB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무역전환’(관세 정책에 따라 역외에서 역내 국가로 수입처가 바뀌는 효과)의 관점에서 미·중 무역 갈등 심화로 반사이익을 얻었던 이 지역은 이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