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퇴직연금은 가입자 수 기준 65%가 기금형으로 운영된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연금 가입자가 아니라 수탁 금융기관이 운용위원회를 꾸리고 자금을 운용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국민연금공단, 공무원연금공단이 가입자가 낸 연금 납부액을 위탁운용하는 방식이다.

"NEST 고객 빼오자"…경쟁이 키운 英 퇴직연금
영국은 2012년 도입한 ‘퇴직연금 자동가입제도’를 계기로 기금형 퇴직연금이 확산했다. 당시 설립된 퇴직연금 운용 공공기관인 국가퇴직연금신탁(NEST)은 중소기업 근로자와 자영업자 등의 퇴직연금을 위탁운용하기 위한 취지였다. NEST가 여러 사업장의 퇴직연금을 한데 모아 운용하면서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자 민간 퇴직연금 수탁회사도 자사 상품을 기금형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다니엘라 실콕 연금정책연구소(PPI) 정책연구본부장은 “자동가입 제도를 도입하면서 퇴직연금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자 금융사들이 수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며 “이를 계기로 계약형 위주로 운용되던 민간 퇴직연금이 기금형으로 전환됐다”고 했다. 안드레아스 프리처드 영국 노동연금부(DWP) 연금정책 대변인은 “기금형 퇴직연금 체제는 금융사의 운용 수익률 경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며 “각 수탁회사의 기금운용위원회가 자기 책임 아래 유연한 투자 결정을 내리고 금융 소비자는 이 성과를 회사별로 비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 경쟁 효과는 수익률에서 드러난다. 영국 연금 전문회사 펜폴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이 나라 퇴직연금의 연간 평균 수익률은 7%에 달한다. 8% 이상인 수탁기관이 7곳이다. 중소기업 근로자 등의 연금을 위탁운용하는 NEST의 수익률도 8.7%다. 한국의 DC형 퇴직연금 연평균 수익률이 1~2% 선인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도 NEST처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퇴직연금을 수탁하는 공공기관인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일명 푸른씨앗)을 지난해 9월 설립했다. 푸른씨앗도 NEST처럼 기금형으로 운용된다. 하지만 시장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퇴직연금 가입 의무가 없고, 사업주와 근로자의 관심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 전문가는 “수탁액이 5000억원은 돼야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데 푸른씨앗은 아직 2000억원 수준”이라고 했다.

런던=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