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순진무구한 외계인 '니나' 눈에 비친 가혹한 노동조건과 성차별 현실

외계인 '호리하이코키야'는 자신의 행성에서 1억광년 떨어진 낯선 별에 불시착한다.

떨어진 곳은 1978년의 대한민국 서울이다.

도착한 지구의 가장 고등한 지적 생명체인 인간, 그중에서도 가장 평균적 모습으로 변신한 그는 마주친 사람들을 따라 큰 건물로 함께 들어간다.

그곳은 청계천의 피복 공장이었고, 그가 마주친 사람들은 여성 성별의 노동자, 즉 '여공'들이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평범한 여공으로 지구 잠입에 성공한 호리하이코키야는 10번 시다('보조'를 뜻하는 은어), 2번 미싱사, 홍일점 재단사를 거쳐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고, 열악한 노동 현실의 부당함에도 점차 눈을 뜨게 된다.

제11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인 김하율의 장편소설 '이 별이 마음에 들어'는 1978년 대한민국에 떨어져 여공으로 살아가는 외계인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SF(과학소설)적인 설정의 외피를 띠고 있지만, 흔히 '공순이'로 불리던 70년대 서울 여성 노동자들의 부당하고도 가혹한 노동 현실에 관한 이야기가 소설의 핵심을 이룬다.

[수림문학상] 70년대 청계천 여공으로 변신한 외계인 이야기
'니나'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외계인이 가진 탁월한 능력으로 청계천 피복 공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고향 별에서는 필요하지 않았던 공감 능력과 사회성의 결여로 많은 문제에 직면한다.

그러던 중 재단 보조인 나성의 도움으로 인간의 감정과 사회성을 익히게 되고, 한 재단사를 만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면서 동거하고 가족도 이룬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

소설의 한 축이 1978년 서울 청계천 일대 여공들의 가혹한 노동 현실이라면 다른 한 축은 2023년 택배 기사로 일하는 니나의 업둥이 아들 '장수'의 플랫폼 노동이다.

배달하다가 사고가 나 회사로부터 경고를 받았던 날, 아들은 엄마 '니나'로부터 목소리를 내 싸우라는 말을 듣는다.

장수는 싸우고 싶어도 인공지능(AI) 상사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면서 "엄마는 알고리즘이 뭔지 아냐"고 대들고, 다음 날 니나는 종적을 감춘다.

평소 자기가 외계인이라고 말해온 엄마는 갑자기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이 별이 마음에 들어'에서 작가는 가혹하고 부당한 노동 조건과 성차별 등 비인간적인 상황에 놓인 70년대 청계천 피복공장 여공들의 고단한 삶을 순진무구한 외계인 주인공 '니나'의 눈을 통해 그려 보이는데, 이 이야기가 상당한 몰입감을 준다.

작가는 시간이 오래 흐른 현재에도 니나의 아들인 택배 기사 '장수'의 삶의 조건이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세대를 관통하며 대물림되는 가혹한 노동의 조건을 꼬집기도 한다.

소설은 안정적인 문장과 흡입력 있는 전개, 촌철살인의 유머 등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빠르게 읽히는 가독성이 돋보인다.

특히, 역사적인 이야기에 젊은 상상력을 더해 SF적인 감성을 더해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준 작가의 노력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수림문학상 심사위원단은 "이 소설이 독자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면서 "트렌드를 수용하는 작가의 능력이 향후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