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문을 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전문 매장. /한경DB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문을 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전문 매장. /한경DB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조다이아몬드 반지 수요가 늘면서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이 시장 1위 업체인 드비어스는 다이아몬드 원석 가격을 지난해 7월 캐럿당 약 1400달러에서 올 7월 850달러 수준으로 인하했다. 드비어스가 고가 정책을 강조하는 기업임을 고려하면 1년 새 값이 40% 떨어진 건 이례적인 일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인조다이아몬드 시장의 급성장을 꼽았다. 1~2캐럿 크기의 외알박이 다이아몬드 반지는 미국에서 청혼 반지용으로 인기가 높은데, 이 수요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연 다이아와 물리적·화학적 특성 같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열풍이 국내외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실험실(lab)에서 인공적으로 배양된(grown) 다이아몬드라는 뜻이다. 다른 투명한 광물로 만드는 모조 다이아몬드와는 다른 개념이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자연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 환경을 인위적으로 재현해 만든다. 다이아몬드의 ‘씨앗’을 키워 만들기 때문에 천연 다이아몬드와 물리적, 화학적, 광학적 특성이 100% 동일하면서 가격은 5분의 1 수준이다. 보석업계 관계자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전체 파이를 키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최소 수백만 년에 걸쳐 만들어지지만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작은 결정이 1캐럿 크기로 자라는 데까지 불과 몇 주면 충분하다. 채굴 과정이 없는 만큼 토양오염, 탄소 배출, 저개발국 노동력 착취 등의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통상 광산에서 다이아몬드 1캐럿을 얻으려면 흙을 6.5톤 파내고 물을 500L 이상 사용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가치소비 흐름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산에 힘입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실험실 다이아’의 인기가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달 국내 한 백화점은 VIP 초청 행사에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로 만든 액세서리를 내놨는데, 2시간 만에 1억 원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보석에 대한 수요는 있지만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폴 짐니스키에 따르면 세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 규모는 2015년 19억 달러에서 2035년 149억 달러로 불어날 전망이다. 드비어스, 알로사, 리오틴토 등 소수의 업체가 절반 이상을 과점해온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 구도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공업용으로 개발, 장신구로 확산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실험실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든다는 발상은 1955년 제너럴일렉트릭(GE)이 공업용 인공다이아몬드 생산에 성공하면서 시작됐다. 장신구에 쓸 수 있는 고품질의 인공다이아몬드는 2010년대 들어 생산이 본격화됐다. 보석 브랜드 판도라는 지난해 모든 다이아몬드를 랩그로운으로 교체하기로 했고, 드비어스도 5년 전부터 일부 제품에 인조를 활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