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판정에 법리상 오류…피 같은 세금 낭비 안 돼"
ICSID, 약 2천800억 배상판정…론스타는 7월 먼저 취소신청
정부, 론스타 ISDS 판정 취소 신청…"판정부 월권·규칙위반"(종합)
정부가 1일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매각 관련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에 불복해 취소신청을 제기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지난해 8월31일 한국 정부에 약 2천800억원 배상책임을 인정한 지 488일 만이다.

취소신청 기한인 이달 6일(미국 동부시간 기준 9월5일)을 닷새 앞두고 내린 결정이다.

법무부는 이날 ▲ 판정부의 명백한 권한유월(월권) ▲ 절차규칙의 심각한 위반 ▲ 이유 불기재를 이유로 ICSID에 판정 취소신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우선 판정부의 월권과 관련해 "국제법상 국가책임의 인정요건인 금융위원회의 '구체적인 위법행위'를 전혀 특정하지 않은 채 만연히 정부의 배상의무를 인정해 국제법 법리에 반하는 판단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외환은행 매각 지연은 정부의 행위가 아닌 론스타의 주가조작 범죄로 발생한 것이어서 국제관습법상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음에도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판정부가 사건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은 하나금융과 론스타 간 국제상업회의소(JCC) 상사중재 판정문을 증거로 채택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변론권·반대신문권을 박탈했다며 이는 절차규칙의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판정부가 추측성 또는 전문증거만으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해 증거재판주의를 위반했고, 스스로 '결정적 증거'(스모킹 건)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도 오히려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 위법하다고도 주장했다.

법무부는 "판정부는 특별한 근거도 없이 정부가 증거를 은닉한 것으로 간주해 책임을 정부에 전가하고 있다"며 "유리한 사실을 주장하는 당사자가 이를 입증할 책임이 있다는 기본 원칙을 간과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론스타가 외환은행 투자 및 수익 실현에 대한 합리적 기대를 가졌다고 설시하면서도 기대의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며 이는 이유 불기재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론스타의 주가조작이 없었다면 매매대금 인하도 없었을 것임에도 특별한 근거나 설명 없이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고, 금융위의 매각 가격 인하 압력과 관련해서는 판정에 모순적인 설시를 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리상 오류가 있는 중재판정으로 인해 소중한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낭비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으로 취소신청을 제기했다"며 "향후 진행될 절차에서 최선을 다해 법리적으로 잘못된 판정을 제대로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앞서 론스타는 2012년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46억7천950만달러(약 6조1천억원)의 손해를 봤다며 ISDS를 제기했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천834억원에 사들인 뒤 여러 회사와 매각 협상을 벌이다가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천157억원에 매각했다.

론스타는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개입으로 더 비싼 값에 매각할 기회를 잃고 가격까지 내려야 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ICSID는 지난해 8월31일 한국 정부에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의 4.6%에 해당하는 2억1천650만달러(약 2천800억원·환율 1,300원 기준)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이후 중재판정부가 배상금이 잘못 계산됐다는 우리 정부의 정정신청을 받아들여 배상금은 2억1천601만8천682달러로 정정됐다.

우리 정부에 앞서 론스타 측은 배상금액이 충분치 않다며 7월29일 ICSID에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론스타 역시 권한유월, 절차규칙 위반, 이유 불기재 등을 근거로 들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