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만에 나타나 '아들 보험금 3억 내놔'…법조계 "막을 수 없어" 논란
부산고법, 아들 사망 보험금 40% 장녀 지급 판결
80대 친모, 화해 중재안 거절후 이의 신청서 제출
법조계 "현행법상 상속 가능" ... '구하라법' 불지펴
아들의 사망 보험금을 챙기기 위해 54년 만에 등장한 80대 친모가 ‘보험금 일부를 양보하라’는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을 거절해 논란이 일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양육 의무를 지키지 않은 부모의 상속을 금지하는 이른바 '구하라법' 도입을 둔 논의에 다시 불이 붙을지 주목하고 있다.

보험금 몽땅 받기 위해 화해 권고까지 거절한 친모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고법 2-1부(부장판사 김민기·사건번호:2023나50045)는 지난 17일 화해권고결정을 통해 2년 전 사망한 김종안씨의 친모 A씨에게 김 씨의 사망 보험금 2억3776만원 중 1억원을 김씨의 누나인 김종선 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사망보험금 총액에서 약 40%가량의 금액을 누나에게 나눠주고 소송을 끝내자는 화해 권고였다. 하지만 A씨는 법원의 중재안을 거절하고 판결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부산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던 김종선 씨. 연합뉴스
지난해 부산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던 김종선 씨. 연합뉴스
선원인 김종안씨는 2021년 1월 경남 거제 앞바다에서 어선이 침몰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로 사망보험금 2억3000여만원과 선박회사 합의금 5000만 원 등 약 3억원의 보상금이 나왔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A씨는 아들의 사망 보험금을 가져가겠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종안씨가 2세 무렵 집을 떠나 연을 끊고 살다가 54년 만에 나타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현행법에 따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의 상속 자격을 인정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인 부산고법 민사2-1부(부장판사 김민기)는 종안 씨의 사망보험금 중 1억원을 고인의 친누나인 종선 씨에게 지급하라는 화해권고결정을 했지만, 친모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 판결은 오는 31일 내려진다.

현행법상으론 자식 버린 부모도 상속 가능

법조계에선 종안 씨의 사망보험금을 친모가 모두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민법 1004조에 따르면 자식이 사망한 경우 살해나 유언장 위조 등의 결격사유만 없다면 친부모의 상속권을 인정하게 돼 있다. 자녀를 버린 친부모일지라도 재산을 상속받는 데 문제가 없다.

이런 이유로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해서 제기돼왔다. 특히 2019년 11월 가수 구하라 씨의 사망이 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한층 키운 계기로 작용했다. 과거 구 씨를 버리고 가출했던 친모가 상속재산을 받기 위해 나타나면서 여론의 비판이 이어졌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이른바 '구하라법' 도입 움직임이 일어난 배경이다. 구하라법은 민법 1004조 '상속인의 결격사유'에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사람'을 추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11월 초 발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도 2021년 비슷한 취지의 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민법 1004조에 상속권 상실에 대한 선고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법이 도입되면 부모가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 해당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