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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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작년 상반기 재무제표에 법인세 비용을 7조1071억원으로 잡았다. 올해 상반기 재무제표에선 2412억원으로 낮췄다. SK하이닉스는 작년 상반기 재무제표엔 법인세 비용을 1조8812억원으로 반영했지만 올 상반기엔 -1조7399억원으로 책정했다. 상반기 대규모 적자로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경기 침체로 기업들이 내년에 실제 납부할 법인세가 급감하거나 오히려 환급받아야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내년도 국세 수입 전망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법인세는 전체 국세 수입의 4분의 1에 달한다. 올 하반기 경기가 뚜렷하게 반등하지 못한다면 ‘경기 침체→기업 실적 악화→법인세 감소→세수 펑크’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내년에도 반복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제조업 부진에 법인세 ‘직격탄’

삼성전자 법인세 7.1兆 → 2412억…"진짜 稅收 위기는 내년"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657곳이 상반기 반기보고서(연결재무제표 기준)에 반영한 법인세 비용은 20조3225억원이다. 작년 동기(34조2546억원)보다 13조9321억원 적다. 기업들의 법인세 비용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내년에 실제 내야 할 법인세도 이만큼 감소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반기보고서에 공시된 법인세 비용은 기업들이 자체 추산한 세액일 뿐 실제 납부액은 아니지만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 추이를 가늠할 수 있는 항목”이라고 말했다.

매년 막대한 법인세를 낸 삼성전자가 부진한 실적을 거둔 영향이 컸다. 상반기 재무제표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법인세 비용은 1년 새 6조8000억원 넘게 급감했다. 전체 657개 상장사 법인세 비용 감소액의 거의 절반에 이른다. 자동차 수출 호황에 힘입어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법인세 비용이 대폭 늘긴 했다. 하지만 반도체 불황의 직격탄을 만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국내 기업은 대부분 매년 3월에 전년도 법인세를 국세청에 납부한다. 올해 부진한 기업 실적에 따른 ‘법인세 쇼크’가 내년 국세 수입에 본격 반영되는 것이다. 정부가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을 7년 만에 가장 낮은 3%대로 책정한 것도 건전재정 기조 외에 이 같은 세수 여건을 감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세 수입은 이미 상반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40조원 가까이 덜 걷혔다. 이 중 법인세 결손액이 16조8000억원이다. 올해 기업 실적이 악화하면서 내년에도 세수 부족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문제는 상반기 부진했던 경기가 하반기에 강력하게 회복될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 경제가 부동산개발업체의 디폴트(채무불이행)로 위기에 빠진 데다 미국의 긴축도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중간예납도 ‘복병’

법인세 중간예납에 따른 착시효과도 내년 세수를 좌우할 변수다. 기업들은 매년 8월 말까지 법인세를 중간 납부한다. 예컨대 올해분 법인세를 내년에 한꺼번에 다 내는 게 아니라 올해 8월에 일부 내는 것이다. 방법은 두 가지다. 전년도 산출세액의 절반을 내거나 당해 연도 상반기를 토대로 법인세를 낼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세무비용 등을 감안해 전년도 산출세액의 절반을 낸다.

올 상반기 기업 실적이 전년 동기보다 감소했지만 올해 8월 중간예납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올 상반기 악화한 실적은 내년 법인세수를 짓누르는 요인이 된다. 특히 기업들이 올해 법인세 중간예납 후 실적이 크게 악화하면 내년 4월께 법인세를 환급받게 된다. 과거엔 기업 영업이익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였기 때문에 중간예납에 따른 환급액이 세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

문제는 올해처럼 단기간에 기업 실적이 추락하는 경우 환급액이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환급 여파로 수조원의 법인세 결손이 발생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