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 경제 5개국 협의체인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회의에서 반(反)서방 세력 규합에 나선 중국 러시아와 인도 브라질 등이 엇갈린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개발도상국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공동 대응을 촉구했지만, 브라질은 서방 주요국과의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브릭스의 외연 확대를 놓고 인도는 전격적인 지지를 표하면서도 ‘회원국 동의’란 조건을 달았다.

○모디 인도 총리 “회원국 확대 지지”


'5국이몽' 브릭스…反美 연대 없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전체회의에서 “많은 개발도상국이 브릭스에 가입을 신청하는 것을 보게 돼 기쁘다”며 “개방과 포용, 협력, 호혜의 브릭스 정신을 견지하면서 더 많은 국가가 브릭스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인도는 브릭스 회원국 수 확대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면서도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동의에 기반한 진전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기존 회원국이 동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브릭스의 외연 확대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가장 주목되는 안건이었다. 최근 미·중 간 긴장이 고조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질서가 분열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로 불리는 신흥국의 존재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브릭스 외연 확대에 신중한 모습을 보인 인도가 이날 회의에서 지지를 표하면서 브릭스 확대가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의장국인 남아공의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전날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열고 “브릭스 회원국 확대 문제에 관해 남아공과 중국은 비슷한 견해”라고 밝혔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최근 아르헨티나 등의 브릭스 가입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도 “브릭스는 주요 7개국(G7)과 주요 20개국(G20)의 대항마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인도네시아와 멕시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등 23개국이 공식적으로 가입 의향을 밝혔다. 가입 의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국가를 더하면 40개가 넘는다. 여섯 번째 신규 가입국이 나오면 2010년 남아공 이후 13년 만이다.

○불협화음 내기도

시 주석의 희망처럼 브릭스가 외연 확대에 의견 일치를 보더라도 반미 동맹 성격을 띠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전날 시 주석은 미국을 겨냥해 “어떤 나라는 패권적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 신흥시장국과 개발도상국을 압박하고 있다”며 “중국은 여러 나라와 협력해 공동으로 대응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화상 연설로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를 비난하면서 “안정적이고 중단 없는 에너지 및 식량 자원 공급을 위해 브릭스 내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 경제의 탈(脫)달러화 역시 탄력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브라질과 인도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보였다. 룰라 대통령은 전날 연설에서 “대통령으로 다시 취임한 이후 미국, 유럽연합(EU)과의 관계를 회복했다”며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인도는 연대보다 제조업 공급망에서 중국의 몫을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모디 총리는 “튼튼한(resilient) 공급망을 위해선 투명성이 중요하다”며 “서로 협력해 전 세계, 특히 글로벌 사우스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타임스오브인디아 등 인도 언론은 “모디 총리가 언급한 ‘튼튼한 공급망’은 미국 일본 호주 등이 주도하고 인도가 참여하는 공급망 전략을 의미한다”며 “제조업 분야의 높은 중국 의존도에 대한 국제사회 우려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모디 총리는 “인도가 수년 안에 ‘세계의 성장엔진’이 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인도 경제는 조만간 5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정상회의는 24일 일정을 마무리한다.

이현일/신정은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