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번 빅토리아주립 도서관
멜번 빅토리아주립 도서관

○ 왜 읽는 것인가?


우연히 같은 부서에 배치 받은 동료가 묻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그 아저씨 진짜 책 읽는 게 맞아? 그냥 들고만 다니는 것 아니야?’” (그 아저씨는 저를 가리킨 것입니다)

혹한이나 폭염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책을 읽는 장면은 마치 생성형 AI가 성의 없이 펼쳐놓은 이미지처럼 매우 부자연스럽습니다. 특별한 시험이나 논문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지도 궁금해집니다.

지금부터 일종의 자기고백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저는 마치 고행을 하는 사람처럼 책을 읽는 직장인입니다. 그 독서는 일상을 바꿨고 종교가 없는 제게 때때로 ‘구원’처럼 효능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불현듯 ‘수행자처럼 독서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헤아려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야구를 관람하다가 멋진 타구를 보며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 같은 근사한 계기는 없었습니다만, 꾸준히 독서를 한다면 매 순간 조금이라도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충분한 사유를 통해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야이든지 토론이 가능해 ‘지(知)의 거인’으로 불렸던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의 영향도 컸습니다. 그래서 더욱 집중해서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이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다가가기를 희망했던 마음도 컸습니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 결국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라고 말한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격언도 독서에 천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앙드레 케르테즈
앙드레 케르테즈

○ 어떻게 읽을 것인가?

출퇴근길 입석으로 좌석버스에 올랐던 순간에도 독서를 이어갔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좀 더 똑똑한 세상이 시작된 이후에는 일부러 애써 책을 손에 들고 다녔습니다. 새로운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신호음을 들으면 스마트폰 화면 속 정보가 궁금한 적도 많지만 지하철·버스 승강장에서, 횡단보도에 서서 보행 신호 점등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주로 책을 읽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알려준 동네 도서관의 상호대차 서비스도 독서의 원동력입니다. 꼭 금융회사 상품명처럼 보이는 ‘상호대차’는 말 그대로 작은 도서관 여러 개를 하나의 운영체제로 엮어 책을 쉽게 빌려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책을 신청할 수 있고 원하는 도서관에서 수령할 수 있도록 한 획기적인 서비스입니다.

상호대차가 없었더라도, 도서관은 해리포터 속 덤블도어 교장선생님처럼 언제나 찡긋 미소 지으며 해답을 알려주는 스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읽으려 한 책을 찾기 위해 서가에 가면 근처에는 함께 읽어볼 만 한 이야기들이 가득 꽂혀 있어 더욱 풍부한 독서를 가능케 했습니다. 책 한 권을 찾으려 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보물을 발견한 때가 많았습니다.
윤슬
윤슬

○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습니다. 오래된 직장인이자 좀 더 나이 든 어른이 되자, 제게 독서는 하나의 의식이 됐습니다. 그래 봐야 여전히 한낱 직장인이고 평범한 가족의 일원일 뿐이지만 독서를 하고 난 이후의 저는 다른 사람입니다. 전보다 두려워하거나 쉽게 분노하지 않게 됐고 가능한 한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보이는 것이 많아 소박한 일상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가게 됐습니다.

이제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유홍준 선생이 인용한 조선의 문인 유한준의 문장을 떠올리지 않아도 경험으로서 알게 됐습니다. 단지 문해력이 조금 나아졌을 뿐만 아니라 볼 수 있는 세상이 커졌습니다.

책 읽기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극복하는 도구로서도 유용했습니다. 아버지와 이별을 하고 유난히 빠져들었던 분야가 대역사를 다룬 책입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비롯해 <문명의 붕괴> <대변동>을 연이어 읽었고 <스케일> <특이점이 온다>를 읽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문명 3부작도 읽었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브로카의 뇌>도 아껴 읽었습니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우주 속에서 개인적인 슬픔은 매우 작아 보이니 큰 위로가 됐습니다.

몇 해 전부터는 1년 동안 읽은 책을 기록 후 자체적으로 ‘올해의 책’도 선정하게 됐습니다. 운동선수가 기록을 달성하는 것처럼 누적 독서량에는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독서를 통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도 도서관에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