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무량판 아파트'는 죄가 없다
한바탕 광풍이 지나고 나면 냉정하게 지난 일을 되돌아볼 수 있다. 네 탓 공방에 휩싸인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뿐 아니라 인천 검단신도시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로 초래된 ‘무량판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물론 아직 논란이 사그라든 건 아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발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를 논란이 확산한 이달 초보다는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이 늘었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 상용화된 무량판 구조(공법)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건설업계의 전문성 부족과 허술한 현장 관리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더 심각한 건 국민의 불안을 진정시켜야 할 정부가 오히려 공포를 확산했다는 점이다.

설계·시공·감리 총체적 부실

무량판 구조는 대들보 없이 기둥으로 천장 슬래브(콘크리트 바닥)를 지탱하는 건설 공법이다. 수평 구조 자재인 보가 없어 내부 공간이 상대적으로 더 넓어 보이고, 건설 비용과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LH는 2017년 이후 전국 공공아파트 공사에 무량판 구조를 도입했다. 문제는 지난 4월 초 검단 아파트 공사장에서 지하 주차장이 붕괴하는 사고가 벌어지면서 시작됐다. 조사 결과, 설계·시공·감리업체 모두 제 역할을 하지 않은 총체적 부실의 결과물이라는 게 밝혀졌다.

LH식 무량판 구조는 기둥 윗부분에 슬래브가 내려앉지 않도록 전단보강근(철근)을 덧대 기둥이 슬래브를 뚫는 이른바 펀칭 현상을 막는다. 이 철근이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도 누락됐다. 여기에 더해 콘크리트 강도도 기준을 밑돈 것으로 밝혀졌다. 건설공사의 기본은 콘크리트 강도 유지다.

건설업계는 국내 건설 경기 침체로 ‘해외 수주’를 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콘크리트 관리도 제대로 못 하는 등 현장 관리가 엉망인 게 만천하에 알려졌다. K건설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무량판 포비아' 조장한 정부

지난달 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전국 LH 아파트 91개 단지 중 15곳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됐다. 경기 양주의 한 아파트 현장은 150여 개 기둥에 철근이 전부 누락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뒤이어 철근 누락 단지는 총 20개로 5곳이 추가됐다. 2021년 3월 LH 임직원의 투기 의혹에 이은 이른바 ‘제2의 LH 사태’가 벌어졌다. LH는 국토부 산하 공기관이어서 정부가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는 한술 더 떠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민간 아파트 290여 곳도 전수 조사한다고 밝혔다. ‘무량판 포비아(공포)’가 LH 아파트에서 민간 아파트로 전이됐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언급된 민간 아파트 입주민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관리사무소와 건설사에 입주민의 전화가 빗발쳤다.

하지만 민간 아파트는 벽식 구조와 섞인 혼합 무량판 구조여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전문가의 분석이 이어졌다. 정부가 민간과 LH 아파트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불안만 가중시킨 셈이다. 무량판 아파트 사태를 지켜보면서 정부의 대응이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국민에게 주거 불안을 조장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