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오 회장 "섬유패션산업 위기 때 무거운 책임 맡아…각자도생 아닌 협업으로 재도약 이끌 것"
‘동대문 성공신화’의 주인공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사진)이 극심한 침체기를 겪고 있는 국내 섬유패션산업의 구원투수로 나선다. 최 회장은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에 선임됐다. 그는 “각자도생이 아니라 협업을 통해 사양산업으로 인식돼 온 섬유패션산업을 첨단산업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 소통 이끌 것”

섬산련은 19일 임기가 시작되는 16대 회장에 최 회장을 선임했다고 17일 발표했다. 임기는 2026년 8월 18일까지 3년간이다. 섬산련은 원사와 원단, 방직부터 섬유, 패션 브랜드까지 아우르는 섬유패션업계 최대 단체다. 경륜과 리더십을 갖춘 유관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돌아가면서 회장직을 맡아왔다.

최 회장은 현재의 섬유패션산업이 ‘구조적 위기’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동안 사양산업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업체들은 각자도생하는 분위기였고 코로나19와 고금리 시기까지 겪으면서 상황이 악화했다”며 “섬유패션산업 재도약의 골든타임인 이 긴박한 시기에 막중한 임무를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업계 간 소통이 중요하다고 최 회장은 강조했다. 섬유패션산업은 원재료·섬유를 다루는 ‘업스트림’, 직물·염색 등 가공 단계의 ‘미들스트림’, 그리고 완제품을 생산하는 ‘다운스트림’으로 분류되는데, 이들 사이의 협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재도약을 위한 액션플랜을 마련하겠다는 게 최 회장의 구상이다.

그는 “무엇보다 지금 필요한 건 업계 전체의 자신감”이라며 “섬유패션산업이 첨단산업이자 국가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패션계 한 획 그은 전략가

업계에서는 패션계의 살아있는 신화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최 회장이 섬산련 회장으로 등판하면서 경기 침체, 경쟁력 약화의 수렁에 빠진 섬유패션산업업계의 협업과 정책적 지원을 이끌어낼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그는 광장시장 3.3㎡짜리 매장에서 시작해 크로커다일레이디, 샤트렌 등 유명 브랜드를 거느린 패션회사 수장으로 발돋움한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패션그룹형지는 17개 브랜드를 갖고 있고, 오프라인 매장은 2000여 개에 달한다.

1953년 부산에서 6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난 최 회장은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석회공장을 운영하던 부친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기울었는데, 이는 최 회장이 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 기술고를 나와 19세에 페인트대리점을 인수하며 사업을 시작한 그는 서울로 올라와 1982년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크라운이라는 회사를 창업해 여성용 바지를 팔았다. 최 회장은 ‘3050도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국민복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1994년 형지물산을 창업했다. 1996년 대표 브랜드인 크로커다일레이디를 론칭하며 사업을 키워나갔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경영을 본격화하기 위해 인천 송도에 ‘형지글로벌 패션복합센터’를 지었다.

글=양지윤/사진=임대철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