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안 갔다면 지금까지 투어 안 뛰었을 것…지루해지는 건 한순간"
10년 차에 3수 했던 이정은 "LPGA 진출, 고생으로만 생각 말길"
여자 골프 세계랭킹 2위 고진영은 최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후배들에게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고진영은 지난 3일 KLPGA 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총상금 10억원) 1라운드를 마치고 "현재에 너무 만족하면 도전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면서 "친한 후배들과 대화해보면 KLPGA 투어에 만족하고 있고 20대 중반에 (미국에 가서) 잘 안됐을 경우를 걱정하더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저조한 상황에 대해 말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그 전날에도 고진영은 "KLPGA 투어가 워낙 좋다 보니 '굳이 미국에 도전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일본, 중국, 태국 선수들은 도전 의식이 정말 강하고 퀄리파잉 스쿨을 보는 선수가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KLPGA 투어는 LPGA 투어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978년 출범한 KLPGA 투어는 한 시즌 총상금이 34년이 흐른 2012년에 처음으로 100억원대를 찍었고, 2016년과 올해 각각 200억원과 300억원을 돌파했다.

2006년 5천만달러, 올해 1억달러를 넘긴 LPGA 투어보다 상승 곡선의 기울기가 더 가파르다.

10년 차에 3수 했던 이정은 "LPGA 진출, 고생으로만 생각 말길"
몇몇 골프 팬들은 고진영의 말을 듣고 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선수 한 명을 떠올렸을 것 같다.

바로 이정은(35)이다.

이정은은 2014∼2016년 3차례 퀄리파잉 스쿨에 도전한 끝에 비로소 LPGA 투어 전 경기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2016년 당시 28세였던 이정은은 당시 KLPGA 투어 10년 차로서 우승 5차례, 준우승 8차례를 거둔 정상급 베테랑이었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실패를 걱정할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때 이정은은 "오랜 꿈이었다"며 패기롭게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년 차에 3수 했던 이정은 "LPGA 진출, 고생으로만 생각 말길"
6일 제주삼다수 마스터스 2라운드를 마치고 만난 이정은은 오랜만에 나온 KLPGA 무대에 신난 모습이었다.

2021년 10월 부산에서 열린 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이후 22개월 만이다.

"후배들이 잘 치더라고요.

굉장히 재미있어요"라고 말한 이정은은 LPGA 투어 동료 고진영의 견해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은은 "저도 공감한다"며 "제가 있을 때도 KLPGA 투어가 좋았지만, 지금은 더 좋아졌다.

그런 점에서 선수들이 딱히 고생하려고 하진 않을 것 같다"고 동의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신을 담아 LPGA 투어 진출을 후배들에게 추천했다.

이정은은 "그래도 골프 선수라면 꼭 한 번은 와봤으면 좋겠다"며 "전 세계에서 잘 치는 선수들과 경쟁하며 자신의 골프에 대해 알게 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미국으로 갔던 이정은에게 '20대 중반'은 늦은 나이가 아니다.

그는 20대 후반이 되기 전에 올 것을 조언했다.

이정은은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안정적으로 가게 되는데, 나이가 어릴 땐 대담하고 패기가 있다"며 "너무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와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10년 차에 3수 했던 이정은 "LPGA 진출, 고생으로만 생각 말길"
현역으로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동력도 된다.

이정은은 "미국에 안 가고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까지 투어를 안 뛰었을 것 같다"며 "어렸을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지루해지는 것은 한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전하면서)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더 좋은 모습을 계속 오랫동안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떠올렸다.

이정은은 아직 LPGA 투어 우승이 없다.

힘들 땐 소주 한 잔으로 턴다고 농담 섞어 답한 이정은은 "저는 아직 경쟁할 수 있는 상태"라고 여전한 결의를 드러냈다.

10년 차에 3수 했던 이정은 "LPGA 진출, 고생으로만 생각 말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