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슈퍼마켓에서 한 때 우유가 사라졌었다. 농가의 유제품 생산과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정상적이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긴급히 점검해보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육류와 낙농 제품의 정부 인증 시스템을 해킹해 물류에 장애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4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민·관 정보기술(IT) 기술자와 해커들은 전쟁 이후 전방위로 러시아 민간 전산 시스템을 공격하고 있다. 러시아의 사이버전 부대가 우크라이나의 CCTV를 해킹해 미사일 공격을 유도하고 주요 인프라를 공격한 데 대한 반격이다. 우크라이나 민간 해커들은 러시아의 민간 IT인프라를 타깃으로 삼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사이버전 역량이 러시아에 밀려 핵심 인프라와 군사 전산망 공격에는 어려움을 겪자 공격의 방향을 돌렸다. 우크라이나 해커들은 러시아의 일기예보 시스템을 비롯해 국영 철도 회사의 온라인 발권 서비스, 고속도로 통행료 결제 시스템 등에 장애를 일으키거나 서비스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사이버전은 SNS 여론전과 함께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전쟁에 무관심하거나 지지하는 일반인들을 겨냥한 것이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생활에 불편을 초래해 생사를 넘나드는 군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다. 러시아의 편의점 체인이 모바일 앱 회원에게 햄버거와 핫도그 2+1행사를 하자 해커들은 앱을 완전히 다운시키기도 했다. 해커들은 러시아인들이 "어제는 아무 이상없던 앱이 왜 먹통이 됐냐"며 불평하는 SNS 게시글을 공유했다.

공격의 상당 부분은 민간인들이 주도하고 있다. 러시아에선 '킬넷', '팬시 베어' 등 정부과 관계된 단체들이 사이버전을 주도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 백악관이 우크라이나의 사이버전을 지원한다는 러시아 정부의 비난에 대해 한 관계자는 더타임스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새벽에 일어나 우리에게 타타르스탄 정부 청사를 공격하라고 지시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부인했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친척을 둔 40대 우크라이나 사이버전 관계자는 더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일반인을 공격하는 데 죄책감에 대한 질문에 "러시아인들은 우유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의 로켓에 희생되고 있다"고 답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