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전격 강등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미국 신용등급 하향은 2011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이후 12년 만이다. 피치는 향후 3년간 예상되는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증가, 거버넌스 약화 등을 강등 배경으로 꼽았다. 특히 미국 정치권이 부채한도 상향을 놓고 대치하다 벼랑 끝에 몰려 해결하는 일이 반복되는 점도 문제 삼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국의 재정적자 비중은 세수 감소와 재정지출 및 이자 부담 증가로 인해 지난해 3.7%에서 2025년 6.9%로 늘어날 것으로 우려했다.

피치가 1994년 이후 최고로 유지해온 미국 신용등급을 29년 만에 끌어내리자 각국 정부와 금융당국은 시장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백악관은 즉각 성명을 내고 “미국 경제가 가장 강한 회복세를 보이는 이 시점에 신용등급을 강등하는 것은 현실을 거스르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S&P의 신용등급 강등이 있던 2011년엔 미국 증시가 15% 폭락하는 등 시장에 큰 충격이 있었다. 하지만 연방정부의 디폴트 예상일이 임박했던 당시와 달리 부채한도 문제가 해결된 이후 나온 이번 강등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계 최강대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가파른 국가부채 증가와 국세 수입 감소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2017년 660조원이던 국가부채는 문재인 정부에서 400조원 이상 급증해 작년엔 1067억원에 달했고, 올해는 11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당초 예상 대비 세수 결손도 올해 4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3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나라의 곳간을 풀어야 한다고 연일 주장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국가부채 증가 속도가 이어진다면 한국의 신용등급도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파국을 막기 위해서라도 재정 준칙 도입이 시급한데,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33개월째 표류 중이다. 민주당은 재정 악화를 초래한 국가에 대한 피치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