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고잉 홈 프로젝트’ 공연에서 악단의 악장을 맡은 스베틀린 루세브가 번스타인 ‘심포닉 댄스’ 연주 중 청중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고잉홈프로젝트 제공
지난 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고잉 홈 프로젝트’ 공연에서 악단의 악장을 맡은 스베틀린 루세브가 번스타인 ‘심포닉 댄스’ 연주 중 청중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고잉홈프로젝트 제공
지난 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이날 공연은 ‘지휘자의 부재(不在)’ 속에 이뤄졌다.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으레 중앙 자리를 차지해 온 커다란 포디엄도, 프로그램 북에서 가장 많은 분량으로 소개되던 마에스트로 프로필도, 그럴듯한 악단의 정식 명칭도 없었다. 오로지 서로의 소리와 몸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해 하나의 거대한 선율을 뿜어내는 80여 명의 연주자가 청중을 맞이할 뿐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지휘자 없이 대편성 관현악곡을 연주하는 파격 실험을 선보인 ‘고잉 홈(Going Home) 프로젝트’ 공연 얘기다.

이들은 연주 형식만큼 구성원도 독특하다. 세계 각지 명문 악단에서 활동 중인 한국 음악가들이 정기적으로 고국에 모여 공연을 올리기 위해 결성된 단체라서다. 올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단원 또한 40여 개 해외 유수 오케스트라에서 한 자리씩 꿰찬 주역들. 피아니스트 손열음을 주축으로 첼리스트 김두민, 플루티스트 조성현,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호르니스트 김홍박 등이 모여있다.

공연의 첫 곡은 번스타인의 ‘심포닉 댄스’였다.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뮤지컬계 고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요 내용을 아홉 곡의 음악으로 정리한 작품이다. 지휘자의 통솔에서 자유로워진 악단은 첫 소절부터 과감하면서도 유연하게 선율의 윤곽을 그려냈다. 그러자 번스타인 특유의 강렬한 역동성과 세련된 즉흥성이 온전히 살아났다. 꿰맞춘 듯한 세기와 밀도, 같은 길이의 음형과 속도로 선율을 주고받으면서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긴밀한 호흡은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지난 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고잉 홈 프로젝트’ 공연에서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협연하고 있다. 고잉홈프로젝트 제공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지난 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고잉 홈 프로젝트’ 공연에서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협연하고 있다. 고잉홈프로젝트 제공
이어 ‘건반 위의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무대 뒤편에서 등장했다. 그가 들고 온 작품은 클래식 음악의 요소와 재즈의 어법을 결합한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였다. 도입부에서 클라리넷의 불안한 음 처리가 있었으나, 손열음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가벼운 터치로 악단 위에 선명한 색채를 덧입히면서 집중도를 끌어올렸다. 쉼 없이 변하는 리듬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재즈 특유의 약동감을 표현하다가도, 한순간 몸 전체에 반동이 생길 정도로 세게 건반을 내려치면서 격정적인 선율을 뽑아내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재즈의 자유로운 흐름 속에서도 소리의 정교함과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연주하는 것)은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마지막 작품은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미국으로 건너간 그가 흑인 영가, 인디언 음악 등 미국 민요 정신에 영향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시작은 약간 불안했다. 각 악기가 약간씩 다른 속도로 연주하면서 선율 간격이 벌어지는 순간들이 더러 있었고, 작품의 전경과 후경을 담당하는 악기군의 대비가 다소 약하게 이뤄지면서 평면적인 인상을 남겼다. 다행히 주선율이 ‘고잉 홈’이란 노래로 편곡된 2악장부터는 안정을 찾았다. 잉글리시 호른의 선명한 터치와 애수 젖은 음색은 드보르자크의 짙은 향수를 펼쳐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현악이 만들어내는 충분한 양감 위로 청아한 음색의 목관이 한 겹씩 선율을 쌓아 올리면서는 입체감이 완연히 살아났다.
지난 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고잉 홈 프로젝트’ 공연에서 80여 명의 단원이 지휘자 없이 연주하고 있다. 고잉홈프로젝트 제공
지난 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고잉 홈 프로젝트’ 공연에서 80여 명의 단원이 지휘자 없이 연주하고 있다. 고잉홈프로젝트 제공
3악장에서는 통상 연주되는 속도보다 약간 빠른 편이었음에도 응축된 에너지가 돋보였다. 고음역의 세밀한 리듬 표현과 저음역의 웅장한 울림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박진감을 높였다. 선율을 쉼 없이 몰아치다가도, 금세 유려한 터치로 전원적인 색채를 드리우는 연주에서 악단이 일치된 해석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악장. 악단은 강한 추진력으로 악곡 특유의 시원하면서도 장대한 악상을 펼쳐냈다. 콘서트홀 끝까지 뻗어나가는 금관의 광활한 울림은 신세계를 목격했을 때 드보르자크가 느낀 충격과 놀라움, 희열을 펼쳐내기에 충분했다. 목관악기의 평화로운 진행 뒤로 이어지는 현악기의 격앙된 선율과 금관악기와 팀파니가 만들어내는 폭발적인 에너지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거장 지휘자가 음량, 프레이징, 악상 표현, 방향성 등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연주와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음향적 밸런스가 특정 악기군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고, 셈여림 표현의 폭도 작품 편성을 고려하면 다소 좁게 느껴질 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이들의 음악적 실험은 그 자체로 박수받을 가치가 있다. 새로운 예술적 시도는 언제나 혁신의 발판이 되어왔다. 우린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새로운 씨앗이 꽃을 피울 그날을.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