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복처럼 공장에서 찍어내 개당 2달러 안팎의 염가에 팔렸던 한국 최대 수출품 ‘D램’이 최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1992년 삼성전자의 64M D램 개발 이후 30년 넘게 제조사들은 정해진 규격에 맞춰 D램을 생산하고 팔았지만, 최근에는 주요 고객사의 요구를 반영한 맞춤형 제품을 생산해 최신 범용 D램의 다섯 배 가격에 판매한다. 인공지능(AI) 기술 확산으로 대규모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고성능 D램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3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맞춤형 D램의 대표적 사례로 고대역폭메모리(HBM)가 꼽힌다. HBM은 D램을 수직으로 4단, 8단 등으로 쌓고 연결해 데이터 처리 용량·속도를 일반 D램 대비 열 배 이상으로 높인 제품이다.

지난해 12월께부터 세계적으로 챗GPT로 불리는 생성형 AI 열풍이 불면서 HBM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생성형 AI의 서비스를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언어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하고 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가 필수적이다. 업계에서 연산용 칩으로 그래픽처리장치(GPU), GPU를 보조할 데이터 저장장치로 HBM이 낙점받았다.

피터 리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반도체본부장은 “AI 기술 확산으로 올해 HBM이 전체 D램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에 달할 것”이라며 “2025년에 HBM이 전체 D램 매출의 27%, 2027년에는 30%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내년 말까지 총 2조원 이상을 HBM 증설에 투자할 계획이다.

HBM이 끝이 아니다. 앞으로는 D램에 중앙처리장치(CPU) 같은 연산 기능이 더해지면서 메모리반도체가 CPU, GPU를 제치고 AI 반도체산업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에 일부 CPU 기능을 추가한 ‘PIM(processing in memory)’이라고 불리는 차세대 제품을 개발했다.

황정수/김익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