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카드의 아버지, 영월 밀림 속에 한옥의 미래를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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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미친남자
더한옥호텔앤리조트 대표 조정일
결제 플랫폼으로 세계 누비다
골프 거리측정기로 비율 익혀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인 '건축'
유럽·일본의 보존 부러워 시작
뉴욕·파리에 한옥 짓고 싶다"
더한옥호텔앤리조트 대표 조정일
결제 플랫폼으로 세계 누비다
골프 거리측정기로 비율 익혀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인 '건축'
유럽·일본의 보존 부러워 시작
뉴욕·파리에 한옥 짓고 싶다"

5성급 특급호텔에 맞먹는 가격의 한옥 호텔과 강릉, 전북 전주, 전남 함평 등의 한옥마을, 서울 북촌의 한옥스테이까지 다 가봤지만 어딘가 늘 불편했다. 벌레와 사투를 벌이거나 삐걱대는 마루가 거슬린다든가, 너무 좁고 답답하거나 온도와 습도가 몸에 잘 맞지 않았다. 다닥다닥 붙은 옆집이 신경 쓰여 편히 쉴 수 없다는 것, 무엇보다 겉모습을 제외하면 한옥의 실내가 ‘요즘 아파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기억만 남았다.

인생 마지막 한옥 체험이라 생각하고 지난 26일 찾아간 영월 남면 북쌍리 문개실마을. 꼬불꼬불 밀림 같은 숲과 서강을 한참 지나 언덕을 오르자 대문 뒤로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거대한 한옥이 펼쳐졌다. 툇마루에 신발을 벗고 종택 안에 들어서자 짙은 소나무 향이 코를 먼저 자극했다.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매끈한 기둥과 단단하고 견고하게 천장을 들어 올린 서까래, 틈이나 전선 하나 보이지 않는 세심한 마감이 눈에 들어왔다. “아... 진짜가 나타났다!”
독채인 두 동짜리 한옥은 대지 면적만 1400~1900㎡. 긴 복도와 너른 마당, 철저히 독립된 침실과 거실이 마치 궁궐에 들어온 것처럼 느끼게 했다. 대체 이런 집은 누가 지은 걸까. 하필 왜 이런 산골에 지은 걸까. 질문이 마구 떠올랐다. 때마침 푸근한 인상의 주인이 등장했다. 그는 1990년대 세계 최초로 통합 교통카드를 만들고 국내 신용카드 집적회로(IC) 칩과 지역화폐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의 조정일 회장(61)이다.
이제 막 ‘더한옥호텔앤리조트 대표’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는 “한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극한까지 해보고 싶었다”며 “우리의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 중 하나인 한옥으로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 먼 미래에도 그 가치를 남기고 싶다”고 했다.

물리학을 전공한 조 회장은 10년 전 사재 1800억원을 털어 ‘제대로 된 한옥’을 짓기로 했다. 그에겐 어릴 적 한옥에 대한 추억 같은 건 없다. 영월엔 연고도 없다. 지난 시간 대부분을 해외 출장으로 보내며 자연스럽게 한옥에 빠져들었다.
“20년 넘게 사업하며 1년에 200일 이상을 해외에서 보냈어요. 유럽, 가까이 일본만 해도 가장 오래 남은 문화유산이 건축이었죠. 그중에서도 오래된 집을 보존하는 문화가 부러웠습니다. 200~300년 된 집이나 고성은 물론이고 몇 천 년 전 무덤 위에 집을 지은 뒤 그대로 호텔로 바꾼 곳도 많았죠. 도시의 랜드마크보다 그런 것들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영월에 터를 잡은 건 약 10년 전. 높이 70m의 기암이자 자연유산인 ‘선돌’에 여행을 왔을 때다. 선돌에 오르자 어머니 품에 둥글게 안겨 있는 지금의 더한옥 부지가 눈에 들었다. 땅을 매입하고 허가를 받기까지 수년이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원시림과 같은 드넓은 땅, 강에 둘러싸여 육지면서도 독립된 섬처럼 느껴지는 이곳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내겠다고 결심했다.

“한옥은 왜 불편한가, 그 불편함을 어떻게 없앨까가 관건이었어요. 한옥이 외면받게 된 이유는 대부분 ‘재료’에 있었습니다.”


대목장 18명과 동고동락 … 알록달록 기와 눈길
최상의 재료를 최고의 목수들에게 맡겼다. 국내 대목장은 약 30명. 그중 18명을 섭외했다. 처음엔 “안 됩니다”라는 소리만 귀가 따갑게 들었다. 통상 대목장은 큰 그림만 잡은 뒤 칠 등 자잘한 일은 모두 일반 목수들이 분업하는 게 관행이다.

더한옥 안에선 기존의 한옥에선 상상도 못 할 일들이 벌어진다. 한옥이 과거에만 머물지 않도록 한옥의 본질은 지키되 편의성을 과감하게 살렸다. 독일 기술로 제작한 투명 모기장은 한옥 창문을 열어도 해충이 들어오지 않게 하고 바깥 경치를 즐길 수 있게 했다.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게 하기 위해 지붕 구조물 사이에 독일산 단열재를 쓰고 뉴질랜드산 양털을 채웠다.
이런 혁신들은 목수 세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남은 프로젝트에 일하고 싶다는 이들이 줄을 선다. 남대문 복원을 했던 정태도 대목장은 더한옥을 본 뒤 “내가 평생 꿈꿔온 한옥을 봤다”고 했다. 눈이 좋은 사람들은 기왓장만 보고도 다른 것을 눈치챈다. 기와가 일반적인 먹색만이 아니라 울긋불긋한 벽돌색 기와와 뒤섞여 있다.
“자연의 빛을 닮은 기와를 쓰고 싶었습니다. 기와 업체를 어렵게 설득해 굽는 온도와 시간을 달리해 여러 빛깔의 기와를 제작했어요.”

더한옥에 투입된 예산은 총 1800억원. 아무리 '좋아서 한 일'이라지만 비즈니스로서의 성공 가능성이 궁금했다.
"국민소득 3만불을 넘어가면 자본 중심에서 문화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패러다임이 이동합니다. 내가 머무는 공간, 그것을 채우는 콘텐츠, 문화와 여가 생활에 모든 소비가 집중될 수밖에 없어요. 그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공통적인 현상이지요."

"뉴욕과 파리에 '더한옥'을 영월에 지은 방식 그대로 짓는 방안을 한 펀드와 논의 중입니다. 대목장도, 기와도, 우리 나무도 함께 해외에 진출한다고 생각하니 이미 설렙니다."

"미국의 목재 건축회사들도 보를 세우고, 서까래를 쌓는 등의 한옥 건축기술에 깜짝 놀라고 가더군요. 오랜 세월을 거쳐 전수되어온 고도의 기술이 사라지지 않도록, 첨단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접목해 세계에서 놀랄 만한 건축 유산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영월/ 글·사진 =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