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 지휘자 겸 바수니스트 소피 데르보가 지난 2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을 지휘하며 모차르트 바순 협주곡을 협연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프랑스 출신 지휘자 겸 바수니스트 소피 데르보가 지난 2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을 지휘하며 모차르트 바순 협주곡을 협연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부드러움과 우아함, 따뜻함과 세련미.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올해 여섯 번째 정기연주회를 관통한 이미지는 이런 단어들로 요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 특유의 내밀한 공감과 온화한 배려가 돋보이는 음악이었다.

유난히 험악했던 장마가 마침내 물러간 지난 26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이 공연의 주인공은 소피 데르보였다. 프랑스 태생인 데르보는 2015년부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바순 수석으로 일하고 있는 세계 정상급 바수니스트다. 빈 필 합류 전 2년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콘트라바순 주자로 활약했기에 그에게는 ‘세계 양대 교향악단이 선택한 바수니스트’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데르보는 2019년 아르메니아 국립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이래 지휘자로도 활동 중이다. 이번 공연은 데르보의 두 가지 면모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1부는 모차르트의 명곡들로 채웠다. 데르보는 ‘코지 판 투테’ 서곡에서는 지휘봉을, ‘바순 협주곡’에서는 자신의 악기를 들고나왔다. 서곡은 다소 불안한 면이 없지 않았다. 데르보의 비팅은 명료함보다는 유연함에 방점이 찍혀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목관 앙상블이 부각될 때마다 파트 간 타이밍이 미묘하게 어긋나곤 했다. 하지만 연주의 전체적인 흐름은 원활했고, 목관의 호흡과 표정을 세심하게 포착하려는 손길에서는 지휘자의 ‘본업’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바순 협주곡이었다. 18세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잘 드러난 이 곡에서도 데르보는 유연함이 두드러지는 연주를 들려줬다. 리듬 처리도 부드러웠고, 악구 사이의 연결도 매끄러웠다. 잔향이 많은 공연장에서 음량을 크게 가져가거나 악센트에 필요 이상의 힘을 주지 않아 솔로의 움직임이 관현악의 울림에 가리거나 묻히곤 했음에도, 데르보는 자신의 스타일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면서 특유의 우아한 표현을 여유 있게 펼쳐나갔다. 빈 필 수석답게 의연한 모습이었다.

중간의 칸타빌레 연주는 그의 클래스를 보여준 명장면이었다. 모차르트 애호가라면 이 악장에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백작 부인의 정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협주곡은 그보다 한참 앞서 작곡됐기에 그 애수의 표현이 과해선 안 된다. 데르보는 풍부한 표정으로 노래하는 동시에 절제미를 견지한 연주를 통해 수위를 잘 조절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특별한 감수성과 음악성의 소유자라는 사실도 충분히 드러냈다.

2부에서 데르보는 다시 지휘봉을 들고 베토벤의 ‘교향곡 제4번’을 조율했다. 베토벤이 남긴 아홉 편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온화하고 목관악기 솔로가 가장 잘 부각되는 곡이라는 점에서 그의 선곡은 자연스러웠다. 이 곡에서도 그의 지휘봉은 유연하게 움직였고 목관 솔로를 가꿔내는 손길은 세심했다. 덕분에 첫 악장의 다채로운 악상들이 우아하게 펼쳐졌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리듬의 생동감과 추진력을 유지한 데다 필요한 순간에는 악센트를 첨가해 단조로운 감을 없앴다.

비록 중간 두 악장의 주제부 리듬을 조형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미진함을 노출하는 등 전업 지휘자에 비하면 부족한 면이 적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적절한 템포 설정과 세련된 표정 연출이 돋보였다. 이날 데르보가 들려준 음악은 베토벤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투영된 작품이다.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베토벤 교향곡 4번은 듣는 이를 미소 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