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는 이른바 '사법정비' 입법을 앞두고 전국적인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네타냐후 본인이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 '방탄입법'이란 비판이 거세게 제기된다. 청년들이 병역을 거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이스라엘이 국가적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가 첫 번째 '사법 정비' 법안의 2∼3차 투표를 앞두고 토론에 들어간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수만 명의 시민이 의회 인근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나흘간의 행진을 마친 시위대는 전날 예루살렘 의회와 가까운 사커 공원에 텐트촌을 차리고 의회로 몰려갔다. 시위대는 의회 앞에서 밤을 새웠다. 앞서 회원 수 80만명의 최대 노동운동 단체인 히스타드루트(이스라엘 노동자총연맹)도 총파업을 예고했다.

의회가 24일 처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은 총리의 장관 임명 등 행정부의 주요 결정을 사법부가 '합리성' 판단에 따라 뒤집을 수 있는 대법원의 견제 장치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집권당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행정부의 권한을 공무원인 판사가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을 막아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야권과 법조계, 시민단체는 이 법안이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 원리를 훼손해 독재로 이어질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1996년 처음 집권에 성공한 뒤 27년간 이스라엘 정계에서 중심 역할을 해왔다. 1996년~1999년과 2009년~2021년 두 차례 총리를 지내고 물러났으나, 지난해 민족주의 극우 세력과 손잡고 세 번째 집권에 성공하는 등 16년간 총리로 재임했다. 그러나 재임 기간 친분 있는 인물들의 개인적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보석과 돔페리뇽 샴페인 등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고, 언론사와 뒷거래를 한 정황 등이 밝혀졌다. 검찰은 뇌물, 사기, 배임 등 혐의로 2019년 그를 기소했고, 재판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최근 건강 이상으로 심장에 보조기기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은 네타냐후 총리는 입원 중 영상 메시지로 "내 상태는 아주 좋다"며 "(사법 정비) 입법을 마무리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며 합의를 위한 노력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정비 입법에 저항해 이스라엘 청년들이 군 복무 거부 선언까지 하고 있어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다. 주변 이슬람 국가들이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굴복시킬 기회를 노리는 가운데 전날 1만명의 예비군이 복무 거부에 동참했다. 이어 정보부대에서 활동 중인 약 1000명의 예비군이 복부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복부 거부 선언을 한 예비군들에게 업무 복귀를 촉구하고 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