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사기 당했는데 되려 피의자 신세…헌재 "평등권·행복추구권 침해"
피싱범에 '인증번호' 건넸다가 기소유예…헌재서 취소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범에게 속아 계좌 개설에 필요한 인증번호 등을 건넸다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피의자가 헌법재판소에서 구제받았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A씨가 낸 헌법소원을 받아들여 지난달 29일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A씨는 2021년 4월 소셜미디어(SNS)에서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부업 광고에 혹해 보이스피싱 조직에 총 1천100만원을 보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수익이 발생했다고 속인 뒤 출금을 위해 필요하다며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A씨는 피싱범이 시키는 대로 신분증과 신용카드 번호, 휴대전화 인증번호 등을 보냈다.

그러나 보이스피싱 조직은 A씨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았고 A씨의 정보로 개설한 계좌를 다른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했다.

울산지검 검사는 사건을 수사한 뒤 A씨가 돈을 대가로 통장을 건넨 것으로 보고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2021년 7월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란 혐의가 인정되지만 검사가 여러 정황을 고려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을 말한다.

헌재는 그러나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며 검찰의 처분을 취소했다.

재판관들은 "청구인(A씨)이 접근 매체(통장 등)의 전달을 요구받은 시기는 수익금 발생을 고지받은 후이므로 접근 매체의 전달과 수익금 발생은 상관관계가 없고, 단지 자신의 투자금을 출금하기 위한 인터넷 사이트 본인인증 수단으로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청구인의 접근 매체 전달과 대응하는 경제적 이익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청구인에게 대가를 요구하면서 접근 매체를 전달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