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진영방송' KBS
1983년 6월 30일 KBS는 6·25전쟁 33주년, 휴전협정 30주년을 기념해 특별 프로그램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시작했다. 전후 30년간 생이별해 생사를 모르고 살아가던 가족들이 저마다 안타까운 사연을 들고 KBS 공개홀로 몰려들었다. 이산가족을 찾는 10만952건의 신청이 접수됐고, 1만189건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생방송은 총 138일간 이어졌다. 최고 시청률은 78%. 세계 방송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2015년 이 프로그램은 전쟁과 분단의 참상을 고발해 인류 평화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KBS가 공영방송이었기에 가능했던 프로그램이다. ‘용의 눈물’처럼 제작비가 많이 들고 호흡이 긴 대하사극, 시청률이 떨어지는 국악 프로그램 등도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은 정부와 기업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방송이다. 민영방송과 달리 영리를 추구하지 않고 준조세 성격의 수신료로 운영하는 대신 고도의 중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생명이다. 그런 점에서 KBS는 공영방송의 본래 의미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부 헤게모니가 달라졌고 그에 따라 방송의 편파성 시비가 이어졌다.

특히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KBS는 ‘노영(勞營)방송’ MBC 못지않게 친정부 행태를 보였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방송을 장악한 좌파의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앵커 클로징 멘트 임의 삭제, 돈봉투 송영길 출연, 좌파에 일방적으로 치우친 패널 구성, 일장기 경례 허위 보도에 이르기까지. 이쯤 되면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실이 국민 제안 공개 토론에 부쳤던 KBS 수신료 분리 징수에 참여자의 96.5%가 찬성했다. 이런 국민 여론은 KBS의 편파성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공익성은 고사하고 중립성도 지키지 못하는 마당에 콘텐츠 경쟁력은 떨어지고, 방만 경영이 도를 넘었다. 1980년 언론 통폐합 때 KBS로 통합된 2TV 폐지론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공영방송이 상업방송과 다르지 않은 오락·예능, 드라마 위주의 채널을 운영할 이유가 뭔가. 공영방송이 공영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면 상업방송으로 돌아가거나 문을 닫아야 한다.

전설리 논설위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