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에 있는 LG화학의 NCC 2공장 전경.  한경 DB
전남 여수에 있는 LG화학의 NCC 2공장 전경. 한경 DB
산업의 기초 소재를 공급하는 석유화학·정유기업들이 잇따라 사업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중국 석유화학회사들의 저가 공세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업황 침체가 계기가 됐다. 이들 기업은 기존 석유화학 사업에선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하는 한편 배터리, 그린 에너지 등 친환경 사업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의 잇단 증설로 인해 범용 제품은 수요가 살아나 업황이 돌아선다 해도 예전만큼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생존 ‘열쇠’

中 증설 러시에…롯데케미칼·GS칼텍스도 '고부가'에 집중
국내 1위 석유화학회사인 LG화학이 여수 NCC 2공장 매각을 추진하는 가운데 국내 2위 석유화학회사인 롯데케미칼은 지난 1월 파키스탄 자회사인 롯데케미칼파키스탄(LCPL)을 매각했다. 보유한 지분 75.0%를 약 2000억원에 판 것으로 추정된다.

이 회사는 2009년 네덜란드 업체로부터 이 법인을 인수해 합성섬유와 페트병의 중간 원료인 테레프탈산(PTA)을 생산했다. 하지만 범용성 제품 대신 고부가가치 사업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PTA 사업을 정리했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매각 대금을 동박 등 배터리 소재 사업과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 생산에 투자할 예정이다.

석유화학회사들이 이처럼 기존 범용 제품 생산공장을 정리하고 있는 건 중국의 저가 공세 탓이 크다. 중국 회사들은 대규모 증설을 통해 자국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저가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무역보험공사에 따르면 중국의 폴리프로필렌(PP) 자급률은 2015년 78%에서 지난해 90%로 높아졌다. PP를 포함해 에틸렌 등 기초 유분과 중간원료의 중국 자급률은 2025년 100%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화학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스페셜티와 재활용 사업으로 ‘피벗’하고 있다. 범용성 제품으로는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을 앞설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DL케미칼, 삼양그룹 등도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대형 석유화학회사 관계자는 “중국과 기술 차이가 조금이라도 있는 부문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라며 “고부가가치 제품만 생존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GS칼텍스, 中 지분 팔고 국내 투자

GS칼텍스는 최근 자회사인 GS바이오를 통해 전남 여수에 바이오디젤 공장을 증설하기로 결정했다. 바이오디젤은 소·돼지기름, 팜유, 폐식용유 등을 가공해 경유로 만드는 것이다. 이 회사는 바이오디젤과 화이트바이오(식물이나 미생물·효소 등을 활용해 기존 화학·에너지산업의 소재를 바이오 기반으로 대체) 등에 집중하고 있다. 또 여수시 적량동 47만㎡ 규모의 부지에 수출용 석유제품 저장시설과 부두 건설을 추진 중이다.

GS칼텍스는 대신 올초 중국 톈진의 윤활유 공장 지분을 모두 정리했다. GS칼텍스와 루로다루브리컨츠의 합작법인인 GS루브리컨츠의 지분 47.35%를 루로다루브리컨츠에 넘긴 것이다. GS칼텍스는 2011년 톈진공장을 지으며 중국 윤활유 시장에 진출했지만 현지 윤활유 공급 과잉으로 2018년부터 5년 연속 적자를 냈다.

다른 정유사들도 재활용이나 수소·바이오 등의 신규 사업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1조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생활폐기물을 활용한 연료 생산 등 신사업에 4100억여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블루수소와 화이트바이오 사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에쓰오일도 수소 생태계를 확대하기 위해 투자에 나섰다.

김형규/김재후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