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가 내란을 일으켰던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해외 거점을 접수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바그너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돈줄을 끊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러시아 당국은 반란 계획에 동조한 의혹을 받는 러시아군 최고위 장성을 체포하고, 그 외 고위급에게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 등 숙청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 프리고진 돈줄 끊어

칼 빼든 푸틴…바그너 돈줄 끊고 군부 숙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세계 곳곳에 구축한 바그너그룹의 용병 사업 네트워크를 접수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시리아를 방문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바그너그룹이 더 이상 그곳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지 않을 것’이란 내용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비슷한 메시지는 바그너그룹의 주요 활동 국가인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말리 등의 정부에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앞으로 바그너그룹의 해외 사업을 직접 관리하고, 벨라루스로 망명한 프리고진의 돈줄을 끊겠다는 얘기다. 또 아프리카와 중동 우방들에 바그너그룹의 활동이 지속될 것이란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프리고진은 아프리카와 중동 각국 정부에 군사 지원을 해주는 대가로 매년 수억달러에 달하는 돈을 벌었다. 벌어들인 외화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수뇌부에는 푸틴의 ‘칼바람’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군 수뇌부를 숙청 중이라는 정황도 포착됐다. 우크라이나전 지휘권을 가진 수뇌부 1인자와 2인자가 나란히 종적이 묘연해져서다. 러시아 매체 모스크바타임스는 이날 우크라이나전 총사령관을 지냈고 현재 부사령관인 세르게이 수로비킨 러시아 항공우주군 총사령관(대장)이 반란 사태와 관련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의 관리들을 인용해 수로비킨이 바그너그룹의 반란 계획을 미리 알았으며, 그가 군 핵심부에서 반란 실행을 도왔을 가능성에 대해 미국 정보당국이 파악 중이라고 지난 27일 보도했다. 수로비킨은 러시아군 내 강경파로 분류되며, 잔혹함과 유능함 때문에 ‘아마겟돈(인류 최후의 전쟁)’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도 바그너그룹이 무장반란을 중단한 24일 이후 공개석상 및 미디어에서 자취를 감췄다.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러시아군 현역 장성 중 최고위 인사로, 현재 우크라이나전 총사령관을 맡고 있다.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프리고진이 해임을 요구한 인물 중 하나다. 외신은 프리고진의 반란에 동조하거나, 제대로 막지 못한 러시아군 장성들을 대상으로 한 ‘칼바람’이 불고 있다고 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의 반란을 대규모 숙청의 계기로 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WSJ는 소식통을 인용해 프리고진의 원래 계획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등 러시아군 수뇌부의 생포였다고 보도했다. 프리고진은 수뇌부가 22~25일 접경지를 방문하는 틈을 타 생포한 다음 바그너그룹 지휘권을 박탈하려는 정부 결정을 뒤엎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계획이 사전에 유출되자 프리고진은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차선책을 택했다고 WSJ는 전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