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제은행(BIS)이 연례보고서를 통해 각국의 고물가 대책과 관련해 당연하면서도 의미 있는 정책 제언을 했다. 인플레이션 대응으로 고금리 통화대책을 펴지만 충분하지 않으니 재정긴축에 무게를 두라는 지적이다. 금리 처방에 제대로 나선 미국을 뒤쫓으면서도 고금리의 고통과 부작용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국이 눈여겨볼 내용이다. 특히 라면값과 분투하는 기획재정부를 향한 쓴소리 같다.

BIS는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빠른 속도로 높였지만 물가안정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며 “긴축재정이 물가와의 싸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세계적 고물가는 산업 공급망 재편과 우크라이나전쟁 등 공급 요인이 크다. 하지만 코로나충격 3년간 저금리와 확장재정을 통한 돈 풀기가 더 큰 요인이다. BIS는 “각국의 재정적자가 과도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는데, 단기 급증으로 보면 한국이 대표적이다.

BIS의 정공법에 비춰볼 때 정부의 라면과 밀가루 가격 인하 압박은 거칠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고물가에 대한 정부 고민은 헤아리고도 남는다.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고 경기가 나빠져도 도무지 근원물가가 떨어지지 않으니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 그래도 ‘완장’을 내세우며 업계에 공포감을 주는 방식은 오래가기 어렵다. 사재기 단속, 원활한 유통망 유지·점검, 가격담합 예방 등으로 수급 상황을 보면서 효율적 경쟁을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 할당관세 혜택을 받았으니 이익을 내놓으라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세제 지원할 때마다 보답하라면 그게 정부인가. 굳이 라면의 원가 구성을 봐도 밀가루 외 급등한 인건비와 물류비까지 복합적이다. 라면만 오른 것도 아닌 판에 가격 급등 품목마다 통제할 수도 없다.

문재인 정부의 재정 방만 후폭풍에 시달리는 추경호 경제팀으로선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대 야당은 당장 35조원짜리 선심성 추가경정예산을 짜자고 나섰고, 한편으로는 내년 예산 편성에 바쁜 시즌이니 이탓저탓할 계제도 못 된다. 그간 다짐해온 대로 건전재정 원칙을 확실히 하면서 정부부터 허리띠를 죄는 게 실효적인 물가 대응책이다. 내년 총선 때문에 이 원칙이 흔들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