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갠더(Ryan Gander)의 넘어진 의자

넘어지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Ryan Gander /Upturned Le Corbusier chair following an afternoon of snowfall/ 81 x 68 x 70 cm/ 20171928년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그리고 샬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한 LC2 안락의자가 옆으로 넘어져 있다. 의자 위로 대리석 수지로 만든 눈이 몇 인치 쌓여 있다.

여기 넘어진 의자가 있다.
의자는 넘어진 채 야외에 방치된 듯 눈이 수북이 쌓여 있다. 의자는 사용자의 습관과 체형 그리고 시간을 간직한 채 자연의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수많은 칼들의 무덤으로 이루어진 철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칠왕국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던 것처럼 의자는 인간의 욕망 중 하나인 권력을 상징한다. 피로사회에 사는 우리는 더 좋은 의자에 앉기 위해 스스로 가해자가 되어 자신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과 가장 가까이 있는 물건인 의자는 그 용도와 역할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퇴근 후 안락함을 주는 의자, 사무실 업무나 공부를 위한 의자, 쉴 틈 없는 계산대의 의자, 신체 일부의 기능을 대신하는 의자(휠체어) 등, 다양한 종류의 의자는 사용자의 직업이나 습관을 비롯한 많은 부분을 보여주기에 페르소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넘어진(물리적이거나 상징적인 의미의) 의자의 모습을 목격한다.

실제로 라이언 갠더(b.1976)는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자신이 휠체어에서 떨어진 모습을 본 뜬 작품 <아무도 모르는 작품(The Artwork Nobody Knows), 2011>을 발표하며 “최악의 위치에서의 자화상”이라는 설명을 덧붙인 바 있다. 하지만 그 절망적인 상황은 더 낮은 곳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구도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서야 우리는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것과 너무도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진다. 그리고 비로소 의자의 영원한 주인은 없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힘들여 차지한 그 의자는 결국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거나 버려진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식사 중 음식을 흘리는 경우가 잦아졌다. 아마도 잡념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온전히 먹는 그 순간에 집중하지 않는 것. 그러다 보니 몸은 음식 앞에 있되 생각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거나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데 가 있곤 한다. 식당이나 커피숍에서 자주 보이는 풍경 중 하나는 서너 명의 친구들이 모여 각자의 핸드폰을 보는 일이다. 몸은 함께 친목을 도모하는 중인데 정신은 각자의 세계로 흩어져 있는 것이다. 코 앞에 있는 음식을 흘리고, 마주본 친구와 가족을 내버려 둔 채 우리는 자주 가상 속 아바타의 삶에 빠져든다. 인생에 약 100년의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는 과연 몇 년을 온전하게 ‘지금’이라는 점 위에 존재할까?

나와 당신은 삶과 죽음이라는 시간의 좌표 위에서 화살촉이 가리키는 한쪽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가 죽은 후에도 꽤 오랫동안 여전히 달은 뜨고, 눈이 내리고, 길고양이는 낮잠을 즐길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기 넘어진 의자가 있다.
넘어지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Ryan Gander, Up ended Breuer chair after several inches of snowfall, 80 x 86 x 73.5 cm, 2016
1926년 마르셀 브로이어가 디자인한 바실리 의자(모델명 B3)가 앞으로 넘어져 있다. 의자 위로는 대리석 수지로 만든 눈이 몇 인치 쌓여 있다

*Ryan Gander
라이언 갠더(b.1976)는 영국에서 태어나 맨체스터와 암스테르담에서 인터랙티브 미술과 순수 미술을 전공했다.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와 이듬해 카셀도큐멘타에서 잇단 주목을 받으며 이름을 알린 그는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개념 미술을 주도하는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다. 퐁피두 센터와 테이트 미술관을 비롯하여 뉴욕 현대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