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취미에 데이팅 앱까지…'A세대' 공략하는 스타트업 [긱스플러스]
소비력 높고 스마트폰 활용 능숙한 A세대
중장년 취향 파악... 패션·취미 플랫폼 주목
데이팅앱·MCN도 등장... 투자자도 '러브콜'
어느 순간 MZ세대가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지만, 이들의 삼촌·부모님뻘인 'A세대'에 주목하는 스타트업들도 종횡무진 활약 중입니다. A세대는 구매력이 있고 소비 활동이 활발한 45~65세 중장년층을 말합니다. A세대의 A는 Ageless(늙지 않는), Accomplished(성취한), Alive(생동감 있는)를 뜻합니다. 한경 긱스(Geeks)가 A세대 사로잡기에 나선 스타트업들을 정리했습니다.
팔도감의 서비스 화면. '산지 직송'  커머스라는 슬로건을 표방하는 만큼 실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농산물을 판매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팔도감의 서비스 화면. '산지 직송' 커머스라는 슬로건을 표방하는 만큼 실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농산물을 판매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4050세대 등 중장년층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는 신선 식품 커머스 '팔도감' 운영사 라포테이블은 지난 5월 35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이 회사는 중년 여성 대상 패션 앱인 '퀸잇'을 운영하는 라포랩스의 자회사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나란히 중년 세대를 정조준한 사업모델을 선보였다.

투자자들은 이 세대의 특성에 주목한다. 라포테이블에 투자한 박형수 퓨처플레이 심사역은 "4050 세대 소비자는 만족시키기 어렵지만 일단 신뢰를 얻으면 충성도가 높은 고객층"이라고 평가했다.

스타트업 업계가 '큰 손'으로 떠오른 X세대(1970년대생) 혹은 A세대(구매력이 있고 소비 활동이 활발한 45~65세 중장년층)에 주목하고 있다. 대부분 소득이 없어 다른 세대에 의존해야 하는 노령층이나 사회에 진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2030 세대보다 구매력은 높으면서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한 중장년층이 각광받는 이유다.

45~64세 인구는 1600만 명 수준으로 한국 인구의 3분의1을 차지한다. 애플리케이션(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 4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의 40·50대 이용자 비중은 52.8%로 20·30대 이용자(39.7%)보다 많았다.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 등 다른 주요 OTT 에서도 40대 이용자가 가장 많았다. 모바일 시장을 이 세대가 주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쿠팡, 11번가, G마켓, 위메프, 티몬 등 주요 10개 e커머스(전자 상거래) 앱의 사용자 연령 비중은 4050세대가 약 54.7%를 차지해 가장 높았다.
퀸잇은 지난해 40대 배우 김희선을 광고모델로 발탁했다.
퀸잇은 지난해 40대 배우 김희선을 광고모델로 발탁했다.

맞춤형 전략 꺼내든 패션 플랫폼


A세대 사로잡기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패션업계다. 저마다 중장년층 취향을 저격하는 제품들을 선보이거나, 이 세대에 맞는 간편한 UI 등의 전략을 내세우며 지갑 공략에 나섰다.

라포랩스가 운영하는 퀸잇은 중년 여성을 타깃으로 덩치를 불린 패션 커머스 플랫폼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앱 다운로드 수는 550만 건을 넘어섰고, 거래액도 매달 100억원 이상씩 올리며 성장 중이다. 카카오벤처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소프트뱅크벤처스, 컴퍼니케이파트너스 등 대형 벤처캐피털(VC)로부터 500억원 이상의 투자도 받았다. 최근 투자 유치 때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4000억원에 달한다.

퀸잇의 성공 비결은 단연 '세대 맞춤형' 전략에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4050 여성이 선호하는 브랜드들로 제품군을 채웠다. 마리끌레르, 지센, 막스까르띠지오 같은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전화번호만 입력하면 회원가입이 완료되는 방식이나 내 사이즈에 맞는 상품만 추천해주는 기능도 도입했다. 이 세대 취향에 맞춰 어울리는 코디를 보여주는 기능도 호평을 받고 있다. 또 TV 홈쇼핑을 통한 '무료 반품'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을 감안해 무료 반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맞춤형 전략의 일환이다.
김건희 여사는 지난해 나토 순방길에 오르면서 스타트업 어니스트서울의 발찌를 착용했다. 어니스트서울은 4050 여성 소비자층이 주요 타깃이다. 사진=연합뉴스
김건희 여사는 지난해 나토 순방길에 오르면서 스타트업 어니스트서울의 발찌를 착용했다. 어니스트서울은 4050 여성 소비자층이 주요 타깃이다. 사진=연합뉴스
퀸잇이 이 시장을 선점하자 '푸미'나 '모라니크' 같은 플랫폼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푸미는 커뮤니티 기능을 넣어 차별화를 꾀했고, 모라니크는 제품 추천이나 결제 같은 CS를 돕는 '스타일 매니저' 시스템을 구축해 경쟁력을 더했다. 그런가 하면 어니스트서울은 4050 여성을 타깃으로 한 주얼리 상품들을 내놨다. 지난해 김건희 여사가 나토(NATO) 순방길에 오르면서 이 회사의 발찌를 착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4050 세대 여성을 공략한 패션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퀸라이브는 X세대 여성들이 가진 구매력과 감성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판매자의 매출·정산 관리나 소비자의 주문관리 기능을 하나의 앱에 모았다. 출시 2년 만에 50만 회원을 확보했다.

그밖에 '남성판 퀸잇'을 표방하는 '댄블' 운영사 테일러타운은 최근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의 낙점을 받았다. 비슷하게 45~65세 남성을 타깃으로 하는 패션 앱 '애슬러' 운영사 바인드는 패스트벤처스가 투자했다. 또 4050 세대 패션 큐레이션 커머스 '라빔'을 운영하는 루덴시티는 초기 투자사 매쉬업엔젤스의 러브콜을 받았다.
오뉴는 중장년층을 위한 다양한 체험 콘텐츠를 선보였다.
오뉴는 중장년층을 위한 다양한 체험 콘텐츠를 선보였다.

취미 여가 플랫폼에도 인기 몰려


취미·여가 분야 스타트업도 이 세대를 주목한다. 은퇴 직후거나 은퇴를 앞둔 연령대가 구매력은 탄탄하면서도 여유 시간이 늘어난 점이 주요 원동력으로 꼽힌다.

중장년층 대상 취미·여가 플랫폼 '오뉴'를 운영하는 로쉬코리아는 최근 더인벤션랩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이 회사는 시드(초기) 단계에선 롯데벤처스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회사는 수채화, 공예, 꽃꽂이, 캘리그라피, 농장 체험 등 200여 개의 체험형 콘텐츠를 확보했다. 김민수 더인벤션랩 수석팀장은 "이 계층은 은퇴했지만 여전히 구매력을 갖고 자기 주도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며 "MZ세대에 집중된 기존 체험 공간을 탈피한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오뉴는 5060 세대가 여가 시간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시기라는 데 착안했다. 현준엽 로쉬코리아 대표는 "은퇴를 앞뒀거나 은퇴한 직후인 시점에 여가 콘텐츠를 많이 소비해야 향후 노년기에 접어들어서도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다"며 "이 '골든타임'을 잡아둬야 고독사 같은 시니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뉴 역시 세대별 맞춤형 전략을 짰다. 이 세대의 커뮤니티 특성을 눈여겨 봤다. 동창회나 동네 모임보다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관계가 오히려 생각을 솔직하게 공유하기 편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또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해 접근성을 높였다. 현 대표는 "이를테면 삼청동 오프라인 시설엔 1층에 상업 공간을 마련해두고 2층에서 이뤄지는 프로그램을 라이브로 구경할 수 있게끔 했고, 매니저가 상주해 고객 응대의 질을 높였다"고 말했다.

비슷하게 중년 커뮤니티 플랫폼 '오이(오십대들의 이야기)'를 선보인 비바라비다도 다양한 소모임 모집·참여 기능을 기반으로 2만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했다. 오이는 특히 젊은층의 '블라인드'나 '에브리타임'처럼 50대만을 위한 익명 기반 소통 공간을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이 세대가 관심을 가질 만한 건강, 뷰티, 유머 콘텐츠를 담아 일종의 소셜미디어 역할을 하는 중이다.
패션·취미에 데이팅 앱까지…'A세대' 공략하는 스타트업 [긱스플러스]

데이팅앱, 시장조사업체, MCN도 등장


그런가 하면 이 세대를 정조준한 데이팅앱도 등장했다. 50세 이상만 가입할 수 있는 앱 '시놀'은 소개팅 방식의 1대 1 매칭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만들 수 있는 1대 N 매칭 기능도 내놨다. 복잡한 인증을 거쳐야 하는 일반적인 소개팅앱과는 달리 앱 내에서 '셀카'를 바로 촬영해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직관적인 UI나 피싱 방지를 위한 안심번호 서비스 등을 도입했다. 이 회사에 투자한 엄세연 AUM벤처스 매니징파트너는 "여러 엔터테인먼트 기능으로 서비스 범위를 확장하고 있어 추후 시니어를 위한 슈퍼앱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임팩트피플스가 내놓은 '에이풀'은 5060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리서치 플랫폼이다. 이를테면 '중년이 선호하는 브랜드는?'과 같은 시장조사 데이터를 만든다. 회사는 이를 통해 중년 세대가 갖고 있는 삶에 대한 트렌드와 인사이트를 파악해 이 세대가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셜벤처다.

그밖에 중년층 크리에이터를 대거 거느린 멀티채널네트워크(MCN)도 있다. 모노라이트는 '신중년'을 겨냥한 상품을 기획한다. 구독자 25만명의 '호걸언니 이경실', 구독자 39만명의 맛연사 등이 주요 소속 크리에이터다.

기존 플랫폼들도 중년층 소비자 사로잡기를 위한 전략 수립에 속속 나서고 있다. '패션 공룡' 무신사는 X세대 여성을 공략하기 위한 편집숍인 ‘레이지나잇’을 선보였고, ‘지그재그’ 운영사 카카오스타일은 중년 전문 패션 앱 ‘포스티’를 운영하고 있다. 청소대행 서비스 청소연구소는 최근 5060 세대 이용자를 대상으로 50여 개 취미 클래스를 큐레이션하는 '우리클래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세대 눈여겨보는 투자자들


벤처캐피털(VC) 등 투자자들이 주목한 이유도 세대의 특성에 있다. 특히 그간 디지털 전환이 더뎠던 중장년층 대상 서비스들이 세대 변화와 함께 온라인으로 넘어오고 있다고 봤다. 라포랩스에 투자한 김제욱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부사장은 "A세대는 시니어에 가깝지만 스마트폰 이용률이 90%, 모바일 쇼핑 이용률은 70%를 넘을 정도로 e커머스(전자 상거래)에서 중요한 연령층"이라며 "과거 TV 홈쇼핑에서 모바일 쇼핑으로 급격히 옮겨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루덴시티에 투자한 박선영 매쉬업엔젤스 심사역은 "중장년 세대의 인구 수는 이미 청년 세대를 뛰어 넘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점에서 시장 자체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고 했다.

지금의 중장년 세대는 과거 비슷한 연령층과 다르다는 점도 투심을 이끌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 세대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다는 의미다. 바인드에 투자한 임채경 패스트벤처스 심사역은 "환경이 좋아지면서 지금의 중장년층은 예전 같은 세대보다 더 건강하고, 자산이 많으며 구매력도 높다"며 "안정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스스로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으로 하는 세대"라고 말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