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서 만난 '공포의 식인 상어떼'...남자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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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C 미국 대표 화가' 윈즐로 호머
그림으로만 말했던 '침묵의 화가'
작품세계로 보는 그의 마음속 파도
그림으로만 말했던 '침묵의 화가'
작품세계로 보는 그의 마음속 파도

조각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남자는 폭풍을 만났습니다. 돛대를 부러트리고 돛을 찢을 정도로 강렬한 바람과 파도. 그래도 남자는 뱃전을 움켜잡은 손을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폭풍도 걷히기 시작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의 목숨은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남자의 피와 살을 탐내는 식인 상어들이 몰려들어 뛰어오르기 시작했거든요. 상어 밥이 되지 않더라도 그가 말라 죽는 건 시간 문제. 그런데…. 바다 저 멀리 지나가는 큰 배가 눈에 들어옵니다. 안타깝게도 남자를 발견하기엔 너무 거리가 멀군요. 과연 그는 구조될 수 있을까요? 배가 다가올 때까지 버틸 수는 있을까요?
지금 보신 그림은 미국 화가 윈즐로 호머(1836~1910)의 걸작 ‘Gulf Stream(걸프 스트림)’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라면, 호머는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역대 최고의 미국 해양화가’로 꼽힙니다. 여름의 초입을 맞아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바다를 주로 그린 호머의 삶을 소개합니다.
100만명 죽은 전쟁, 그 한가운데서
‘세계 최강국’ 미국도 나라가 결딴날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노예 제도를 폐지하려는 북부 지역과 이에 반대하는 남부 지역이 한 판 붙은 남북전쟁(1861~1865년)입니다.
전장에는 죽음이 가득했습니다. 다른 삽화 특파원들은 그 피 튀는 현장을 그대로 그림에 옮겼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편’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돋보이게 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인간에 대한 호머의 애정에는 차별이 없었습니다. 앞에서 본 대표작 ‘걸프 스트림’을 비롯해 그는 평생 흑인이 등장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A Visit from the Old Mistress(늙은 여주인의 방문)’(1876년)는 노예 해방 이후 흑인과 백인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그린 그림입니다.

마음속 바다를 품다

속세에서 멀어지고 싶어서였을까요, 1883년 50대에 들어선 호머는 은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북동부의 바닷가 마을에 정착해 바다를 그리기 시작한 겁니다. 바다는 변덕스러웠습니다.



호머는 말수가 적었습니다. 그의 삶 이야기를 쓰겠다는 사람에게 단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일기를 남기지 않았고 다른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도 대부분 태워버렸습니다. 미국 언론은 그를 ‘은둔의 화가’라 불렀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그림만 그리던 호머는 1910년 9월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혼하지 않았으니 자식이 없었고, 그의 삶에 대해 말해줄 사람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가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는지 그 여부조차 모를 정도로 사생활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작품과 몇 안 되는 작품 관련 메모만 남았습니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고들 합니다. 기록은 없어도 작품을 통해 호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가늠해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의 그림 속 등장인물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재난 앞에 선 무력한 존재일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유명한 구절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거야.”(“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he said.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날씨가 많이 더워져서 바다 그림을 그린 호머의 이야기를 준비했는데, 어떠셨나요. 시원한 바다 그림들 보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재충전을 잘 해야 다음주도 힘차게 살아나갈 용기가 생겨날 테니까요.
*(참고자료) 이번 기사의 내용은 ‘Winslow Homer: American Passage’(William R. Cross 지음)와 지난해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열렸던 전시의 도록 ‘Winslow Homer: Crosscurrents’를 참조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