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100원 넘게 뛰어오른 원·달러 환율이 하반기에는 하락세를 나타낼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과 미국 중앙은행(Fed) 모두 더 이상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시장에 확산한 가운데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업황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무역수지 개선과 함께 올해 말 환율이 달러당 1250~1280원대로 하락할 것이란 예상을 내놨다.
"반도체 살아난다…원·달러 환율 연내 1250원대 될 것"

“한·미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 끝나”

원·달러 환율은 올해 높은 변동성을 보여왔다. 올해 첫 외환시장 개장일인 지난 1월 2일 달러당 1272원60전이던 환율은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따른 한국의 수출 회복 기대에 따라 2월 2일 1220원30전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중국 리오프닝 효과가 제한적인 모습을 보인 데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역전 폭이 사상 최대인 1.75%포인트로 벌어지면서 이달 2일엔 1342원10전까지 치솟았다.

다만 전문가들은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앞으로는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이미 정점을 찍고 당분간 동결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25일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고,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 19일 “(물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더 많이 인상할 필요가 없을 수 있다”며 동결을 시사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사실 환율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못하고 미국의 긴축 수준이 중요한데, Fed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이달을 마지막으로 끝났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한국의 수출도 더디지만 점차 개선돼 오는 10월엔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원·달러 환율이 4분기 평균 1280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중국과 반도체”

전문가들은 향후 환율에 영향을 미칠 가장 중요한 변수로 중국의 경제 회복 속도와 글로벌 반도체 업황 회복 등을 꼽았다. 중국 경제가 빠르게 살아나면 그만큼 한국의 수출이 확대돼 국내로의 달러 유입이 늘어나고 환율에 하방 압력을 주기 때문이다. 반도체 역시 한국 전체 수출의 19.3%(작년 기준)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 품목으로서 무역수지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인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무역수지 개선과 반도체 업황 개선이 기대되고 있어 원·달러 환율이 연말 1250원 수준까지 완만하게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경제가 최근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단기적으로 환율이 다시 상승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지난 한 달 동안 중국의 산업생산, 투자, 소매판매 등 주요 경제 지표들이 줄줄이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였고, 특히 부동산 경기가 차갑게 식고 있는 모습”이라며 “중국 때문에 앞으로 1~2개월은 원·달러 환율이 더 상승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백 연구원은 “중국 경제가 변수가 되겠지만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이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고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사실상 중단했다고 보기에 원·달러 환율이 하반기 평균 1270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기적으론 오른다…달러 싸질 때마다 사라”

원·달러 환율이 연말까지 하락세를 보이겠지만 경기 침체 우려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달러 가치가 일시적으로 튀어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올해 3분기까지는 물가상승률이 둔화해 긴축 종료 기대가 커지는 만큼 환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4분기 초께 미국 경제가 얕든 깊든 침체 현상이 나타나 안전자산 선호 현상과 함께 환율이 튀어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튀어오른 환율은 Fed가 경제 침체에 대응해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신호만 줘도 다시 안정화될 텐데, 그 시기를 올해 12월로 보고 있다”며 “경제 침체와 Fed의 대응을 시장이 선반영해 올 11월께 환율이 1260원 안팎을 기록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연말까지 원·달러 환율이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개인 투자자의 ‘환테크’ 전략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권아민 연구원은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있고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 기반의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본국 회귀)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한국과 같은 이머징 마켓으로의 달러 공급이 과거보다 구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장기적으로는 환율이 상승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올해 환율이 떨어질 때마다 달러를 사 모으는 게 좋은 선택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달러 투자를 권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백석현 연구원은 “달러 가치가 역사적으로 높기 때문에 지금은 달러 투자에 돌입하기보다 보수적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박상현 연구위원은 “Fed가 금리 동결 기조를 이어가면 엔화가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올해만 놓고 보면 달러보다 엔화에 투자하는 게 보다 나은 선택일 수 있다”고 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