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김선아 지휘자 교회음악 명료한 해석 돋보여
음악가·지자체·관객이 만든 공연…부천시립합창단 '사도 바울'
이달 개관한 부천아트센터에서 지휘자 김선아가 이끄는 부천시립합창단이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사도 바울'을 지난 25일 무대에 올렸다.

멘델스존의 '사도 바울'은 유럽에서도 실황 공연을 만나기 쉽지 않은 명작이다.

연주는 부천필하모닉,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이 맡았다.

김선아는 공연에 앞서 오라토리오 장르, 작품, 음향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곁들여 관객들의 감상을 도왔다.

그는 베토벤의 다장조 미사, 모차르트의 대미사, 하이든의 '천지창조', 슈베르트의 미사 6번, 바흐의 '마태 수난곡' 등 굵직한 교회 음악의 대작들을 연이어 무대에 올리고 있다.

바로크, 고전, 낭만 합창 음악을 폭넓게 오가며 매번 명료한 해석과 탄탄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부천아트센터의 음향 또한 관심사였다.

이날 공연은 오케스트라, 성악 솔리스트, 오르간뿐 아니라 대규모 합창단까지 모두 함께하는 첫 공연이어서 공연장 음향을 다시금 확인할 좋은 기회였다.

공연은 시종일관 탁월한 수준을 유지했다.

바흐와 헨델의 강력한 자극을 받아 나온 작품이지만 멘델스존의 '사도 바울'은 이미 고전주의적 작법이 보편화된 19세기의 오라토리오다.

이 때문에 성부 간의 촘촘한 대위법보다는 주제와 동기를 조합, 발전시키는 원리가 더 두드러진다.

개별 곡이 끊어져 있어 날카롭게 대비되는 바흐의 수난곡과 달리 전체를 유기적으로 조직하여 템포와 세기의 점증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교향악 규모의 오케스트라도 확연히 구분된다.

김선아는 이러한 차이를 명확하게 해석했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모두를 균형 있게 다뤘으나 베토벤 이후의 음악답게 주제를 몰아가는 추동력과 음향적인 입체감을 선명하게 드러났다.

대비의 원리 또한 놓치지 않았다.

음악가·지자체·관객이 만든 공연…부천시립합창단 '사도 바울'
1부 서곡은 찬송가 '거룩 거룩 거룩'의 주제로 경건하게 열리지만, 2곡의 합창에서는 베토벤식 특유의 추동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어지는 3곡은 다시 거의 바흐 풍의 정갈한 코랄이다.

이처럼 멘델스존은 이전까지의 종교음악을 새로운 차원에서 종합하고 있는데, 김선아와 부천시립합창단은 이러한 상이한 특성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면서도 집중력과 밀도, 음향적인 균형감을 지켜내 듣는 이들을 사로잡았다.

1부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의 현현을 경험하는 사울의 에피소드(14∼16곡)다.

멘델스존은 레치타티보에 이은 예수의 현현을 여성 합창으로 구성했는데, 이때의 신비로움이 탁월하게 표현됐다.

이어지는 영광의 팡파르에서는 강력한 금관과 장엄한 오르간이 가세하여 또 한 번의 전환을 이뤘다.

바흐, 하이든 시대와는 구분되는 낭만주의 오라토리오의 매력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 매혹적인 장면이었다.

2부에서도 호연이 계속됐다.

흥미로웠던 대목은 바나바와 사도 바울이 각각 제우스와 메르쿠리우스, 신의 현현으로 오인당하는 대목이다.

이방인들이 사도들에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는 35곡에서는 멘델스존의 정갈한 서정성이 부각되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멘델스존은 이방인들의 오해마저도 아름답고 기품 있게 그려내고 있는데 아마도 이 이방인들이 그리스인인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은 테너 솔로가 첼로와 한데 어우러지는 40곡 카바티나였다.

테너 김효종은 서정적인 가창을 들려주었고, 첼로의 풍성하고도 선율적인 연주도 인상적이었다.

음악가·지자체·관객이 만든 공연…부천시립합창단 '사도 바울'
부천시립합창단과 부천필하모닉 단원들은 작품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가지고 연주에 임했다.

관객들은 마치 바흐, 하이든, 베토벤, 멘델스존이 하나로 융합되어 전체를 이루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부천필하모닉의 연주는 전반적으로 훌륭했다.

플루트와 클라리넷을 비롯한 목관군의 색채는 선명하고도 우아했고, 금관 또한 투명한 텍스처를 유지하며 그때그때 필요한 음향 효과를 채워줬다.

현악 파트도 시종일관 명민하고 민첩했다.

솔리스트들인 소프라노 이윤정, 테너 김효종, 베이스 우경식도 제 몫을 충분히 감당했다.

관현악과의 호흡이 다소 어긋나는 대목, 독일어의 첫소리 자음이 다소 약하게 들리는 면이 있었지만, 곡의 규모에 비하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흠결이었다.

훌륭한 공연장에서 흔히 들을 수 없는 대곡을 이토록 집중력 있는 연주로 감상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김선아는 매번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되 연주자와 관객들과 발을 맞춰 합창 음악 공연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 번의 좋은 연주가 아니라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에서 나온 것이기에 다음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지자체, 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실력과 신실함을 갖춘 음악가, 진지하게 성원을 보내는 관객들. 이 삼박자가 갖춰지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날 공연에서는 그러한 합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음악가·지자체·관객이 만든 공연…부천시립합창단 '사도 바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