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만의 세계선수권 메달 수확한 '띠동갑 듀오' 신유빈·전지희

2011년 대회 이후 여자 단·복식서 첫 메달…여자탁구 부활 선언
단식에선 '에이스' 자존심 건 경쟁자…복식에선 '환상의 콤비'로

"유빈이 클 때까지 기다리길 잘했네요.

"(전지희) "지희 언니가 있어서 더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어요.

"(신유빈)
한국 여자탁구의 '신구 에이스' 신유빈(18·대한항공)과 전지희(30·미래에셋증권)가 개인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메달을 합작했다.

세계 12위 신유빈-전지희 조는 25일(이하 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2023 국제탁구연맹(ITTF) 개인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복식 8강전에서 3위 소피아 폴카노바(오스트리아)-베르나데트 쇠츠(루마니아) 조를 3-0(11-9 15-13 11-4)으로 돌려세우고 동메달을 확보했다.

한국 여자탁구의 '경사'라 할만하다.

김경아-박미영 조가 여자복식에서 동메달을 따낸 2011년 대회 이후 한국 여자탁구는 한 번도 개인전 세계선수권 단식이나 여자복식에서 메달을 수확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2024 파리올림픽을 1년 앞두고 열린 이번 대회에서 여자복식 메달을 수확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2010년대 중후반 한국 여자탁구를 지탱한 중국계 귀화 선수 전지희와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해 여자탁구의 '미래'로 기대를 모으는 신유빈이 열두 살 나이 차를 넘는 동료애를 바탕으로 메달을 합작한 점은 극적이다.

전지희는 세계적인 강자로 인정받으면서도 유독 세계선수권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2008년 한국으로 건너왔고 2011년 새 국적을 취득한 전지희는 ITTF의 귀화선수 출전 제한 규정 탓에 세계선수권에는 2018년이 돼서야 출전할 수 있었다.

전지희는 2018년 단체전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냈을 뿐 개인전 세계선수권에서는 번번이 입상에 실패했다.

자신보다 뒤처져 있다고 여겼던 중화권 선수들이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 시상대에 서는 것을 보며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나이 탓인지 기량이 조금씩 하락한다는 평가마저 나올 무렵 신유빈의 등장은 전지희에게 커다란 자극제가 됐다.

'신구 에이스' 간의 경쟁이라는 구도 속에 둘의 단식 맞대결은 탁구계 '빅 매치'로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이들은 경쟁자이면서 '원 팀'이기도 했다.

2019년부터 복식조를 결성한 둘은 호흡을 맞춰갈수록 시너지를 내며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결국 전지희는 혼자서는 이루지 못하던 세계선수권 메달의 꿈을 '띠동갑 동생' 신유빈의 도움으로 이뤄냈다.

전지희는 8강전 승리 뒤 "유빈이 클 때까지 기다리길 잘한 것 같다.

잘 큰 유빈이 덕에 이 자리에 올라왔다고 생각한다"면서 "유빈아 고마워!"라고 외쳤다.

이어 "(첫 개인전 세계선수권 메달까지) 긴 시간이 걸린 만큼 정말 좋다"면서 "유빈이에게 정말 고맙고, 그동안 포기하지 않고 계속 견딘 나 자신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신유빈에게도 전지희는 고마운 존재다.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스타로 떠올랐으나 한동안 기대만큼 성적을 못 낸 게 사실이었다.

2021년 개인전 세계선수권에서는 손목 부상으로 도중에 기권하는 아픔도 겪었다.

아직 10대 소녀인 신유빈은 언니, 오빠에게 조금은 기댈 수 있는 복식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임종훈(한국거래소)과 함께 나선 혼합복식에서는 아쉽게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전지희와는 결국 목표를 이뤘다.

신유빈은 "부상도 있고 여러모로 쉽지 않았는데, 지희 언니가 있으니까 더 편하게 할 수 있었다"면서 "오늘 2게임에서 많이 뒤지다가 이겼는데, 이런 경기를 지희 언니와 함께 이겨내서 좋다"고 말했다.

신유빈과 전지희의 다음 상대는 세계랭킹 1위 쑨잉사-왕만위 조(중국)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신유빈은 "더 이기는 게 목표다.

남은 경기에서 더 좋은 내용을 만들 수 있도록, 언니와 상의해서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단식에서는 탈락한 전지희는 복식 준결승전보다, 그보다 앞서 열리는 신유빈의 단식 16강 경기를 더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신유빈은 단식 16강에서도 1위 쑨잉사를 상대한다.

전지희는 "유빈이가 너무 기분 좋게 생각만 하지 말고 단식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도와줄 수 있는 만큼 도와주고 싶다.

힘을 더 모아야 한다"면서 신유빈을 향해 '파이팅!'을 외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