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돈 나갈 일이 많은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곧 날아올 카드대금 청구서에 머리가 아픈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이들 장난감 가격은 왜 그렇게 올랐으며, 무슨 카네이션 꽃다발 하나가 소고기보다 비싼지. 그런데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겨우 3.7% 올랐단다. 1년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이란다. 통장은 ‘텅장’이 돼 가는데 물가 상승률은 낮아지고 있다니 어떻게 된 것일까.

주부의 물가, 직장인의 물가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물가 지표와 개개인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체감 물가 사이엔 차이가 있다. 통계청이 조사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1월 전년 동월 대비 5.2%에서 2월 4.8%, 3월 4.2%, 4월 3.7%로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밥값·공공요금 다 올랐는데…물가상승률이 낮아졌다고?
체감 물가는 다르다. 한국은행은 매달 ‘물가 인식’을 조사한다. 일반인이 1년간 물가가 얼마나 올랐다고 생각하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1월 5.0%에서 2월 5.2%, 3월 5.1%, 4월 4.9%로 큰 변화가 없다. 마트에서, 식당에서, 가스요금 고지서에서 느끼는 물가 상승률도 3%대는 아니다.

공식 물가와 체감 물가의 차이는 많은 부분이 심리적·주관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소비자물가지수는 458가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조사해 산출한다. 반면 소비자 개개인은 연령, 직업, 가족 구성 등에 따라 주로 구입하는 품목이 다르다. 따라서 어떤 품목을 많이 구입하느냐에 따라 체감 물가에 차이가 생긴다. 주부는 어느 날 장을 보러 갔다가 배추값이 두 배가 된 것을 보고 물가가 두 배로 뛰었다고 생각한다. 직장인은 7000원이던 김치찌개가 9000원으로 오른 것을 보고 ‘3%는 무슨, 20%는 더 올랐구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 사람들은 물가가 내린 것보다 오른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1년 전과 비교해 치킨 가격이 크게 올랐고 휘발유 가격은 많이 내렸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대개 치킨 가격이 비싸진 것에만 주목한다. 생활 수준이 향상돼 소비 규모가 커진 것을 물가가 상승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구형 폰을 버리고 최신형 폰을 사면서 물가가 올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배달비·자가 주거비 빠진 물가지수

물론 심리적·주관적 요인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통계 기법상 한계가 존재한다. 통계청은 5년마다 소비자물가 조사 대상 품목과 가중치를 조정한다. 이 때문에 빠르게 바뀌는 소비 구조를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긴다.

지난 몇 년 사이 음식 배달 서비스 이용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소비자물가 조사 대상엔 배달 요금 항목이 없다. 외식 서비스 품목 중 일부에 배달비가 포함된 가격이 반영될 뿐이다. 배달 요금이 오르면 소비자 체감 물가는 올라가는데 공식 물가 지표엔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것이다.

자가 주거비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물가 지표의 한계로 지적된다. 자가 주거비란 집을 소유하는 데 따르는 대출 이자, 재산세, 감가상각비, 자기 집에 세를 놓지 않고 거주하는 데 따른 기회비용 등을 말한다.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도 물가 지표를 왜곡하는 요인이다. 공공요금 인상 억제로 발생하는 공기업 적자와 부채, 회사채 발행에 따른 금리 상승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장용성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작년 6월 발표한 논문에서 자가 주거비를 반영하고 공공요금을 정상화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정부 발표보다 3%포인트 가까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저소득층에 더 높게 느껴지는 물가

소득 수준에 따라서도 체감 물가에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물가 상승률이 높다고 느낀다. 저소득층은 소비지출 중 식료품 등 생필품 비중이 크다. 따라서 물가가 오를 때 소비 항목을 조정해 지출을 줄일 여지가 크지 않다. 고소득층은 비싸진 가격을 지불할 여유가 있지만, 저소득층은 물가가 오른 만큼 구매량을 줄이거나 질이 낮은 상품을 구입해야 한다.

통계청은 올해 말까지 소비자물가지수의 품목별 가중치를 2020년 기준에서 2022년 기준으로 바꾸고, 외식 배달비지수를 발표하는 등 물가지수를 개편할 계획이다. 가구 구성과 연령대에 따른 체감 물가지수도 내놓기로 했다. 그러나 지표 물가와 체감 물가의 차이가 완전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러 보조 지표를 활용해 둘 사이의 간극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