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나를 알기 위해 멈추지 말 것"
최근 오랜만에 류승범 배우가 방송에 나왔다.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류 배우는 슬로바키아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낳고 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예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부인을 ‘자신의 사랑이자 인생의 스승’이라고 밝힌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아내에게 왜 그리냐고 물었더니 “어린아이들은 다 그림을 그려. 자기표현을 그림으로 하는 거지. 근데 너는 멈췄고 나는 멈추지 않았을 뿐이야”라고 답했다고, 그는 그 이야기가 계속 생각났다고 했다.

나도 며칠 동안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 역시 어렸을 때 아빠가 사다 준 작은 스케치북에 매일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다. 운동장에서 철봉에 매달려 있는 친구들의 모습, 집 앞 저수지에 자전거를 타고 놀러 갔을 때 봤던 풍경 등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자연스럽게 스케치북에 채워 나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리지 않았다. 고3 때까지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기보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수능을 잘 봐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나뿐 아니라 내 친구들의 지상 최대 목표였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학생들의 삶은 여전히 비슷한 모양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10대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시간의 시작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제도와 목표에 맞춰 살아가게 된다.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수능 직후 세상에 내던져지는 때다. 수능 성적에 맞춰 전공을 찾아야 하고 그 전공에 맞춰 나를 정의하는 직업을 찾아야 했다. 평생의 짝을 찾는 일만큼이나 중요한데 정작 깊게 고민도 해보지 못한 채 결정한 대학의 전공이 맞지 않았을 때의 혼란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시작한 나의 20대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많이 불안했고 방황했던 시기였다. 내 삶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 보지 못했던 10대를 보낸,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스물일곱 살 여름, 내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나를 찾아가고 있다.

자기의 생각과 표현을 자유롭게 하던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다. 태어나서 처음 입을 떼던 그 순간, 어딘가를 가리키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순간, 온몸으로 내 생각과 의지를 보여주는 시간을 거치며 우리는 자랐다. 그러다 사회적 제도라는 틀 안으로 들어가며, 아이러니하게 개인으로 자신을 더 표현해야 하는 순간에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힘 혹은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내가 다시 10대로 돌아간다면? 글쎄, 어떤 삶을 살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그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엔 그걸 잊은 사람과 잊지 않고 계속하는 사람이 존재할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