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사받다 죽은 그 흑인 또 살아났다… 벌써 99번째” [별 볼일 있는 OTT]
"숨이 안 쉬어져요(I can't breathe)!"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숨졌다. 사인은 질식사.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한 경찰관이 현장 근처에 있던 그의 목을 7분가량 짓누른 결과였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다. 플로이드의 죽음은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대대적인 시위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낯설고 먼'을 통해 영상으로 부활했다. 트레이번 프리·마틴 데즈먼드 로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을 맡았다. 미국 래퍼 조 본 버니지 스콧과 배우 앤드루 하워드가 각각 흑인 시민과 백인 경찰 역할을 맡아 호연을 펼쳤다.

영화의 줄거리는 동일한 사건이 계속 반복되는 '타임 루프' 형식으로 전개된다. 낯선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흑인 남성 카터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길에 나섰다. 담배 한 대를 입에 문 순간, 백인 경찰 머크가 그를 마약 소지자로 보고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부당한 조사라며 항의했지만, 결국 거친 조사 끝에 목이 졸려 사망했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 다시 낯선 여자 곁에서 눈을 떴다. 카터와 머크의 지독한 악연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도망도 가보고 저항도 해보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그렇게 99번째 아침을 맞은 그는 머크 경관과 모든 걸 터놓고 대화를 나눠보기로 한다. 과연 카터는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경찰 조사받다 죽은 그 흑인 또 살아났다… 벌써 99번째” [별 볼일 있는 OTT]
영화의 주요 특징은 크게 세 가지. 우선 32분의 러닝타임이 눈에 띈다. 짧은 상영시간은 타임 루프 장르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똑같은 사건이 계속 반복되며 지루하게 느껴질 만한 부분은 과감히 덜어냈다. 장면을 빈틈없이 구성한 결과 이야기의 깊이는 장편영화 못지않다.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메시지는 주인공들의 대사뿐만 아니라 각종 소품과 장치를 통해서도 전달된다. 영화는 도입부부터 흑인 인권운동가이자 문학가 제임스 볼드윈의 에세이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를 비추며 시작한다. 중간중간에 조지 플로이드의 이름이 적힌 그라피티를 대놓고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서 흑인은 '힘없고 불쌍한 피해자'로 묘사되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도 가난한 흑인들이 모여 사는 슬럼가가 아니다. 주민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을 갖춘 시가지다. 조명 역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아닌 밝고 생동감 있는 색감을 채택했다. 주인공 카터는 수준 높은 언변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로 설정됐다. 이 모든 장치는 흑인을 단순한 사건 피해자가 아닌, 능동적인 권리 주체로 격상시킨다.
“경찰 조사받다 죽은 그 흑인 또 살아났다… 벌써 99번째” [별 볼일 있는 OTT]
영화는 같은 해 미국 아카데미 단편영화상을 받았다. 프리 감독은 수상 소감을 통해 타임 루프처럼 반복되는 인종 차별과 공권력의 폭력을 꼬집었다. "미국 경찰이 오늘도 사람 3명을 죽일 것이고 내일도 3명을 죽일 것이다. 1년으로 계산하면 약 1000여 명이 죽는 셈이다. 이 중 많은 수, 대부분은 흑인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