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조 유방의 천하통일 비결은 '게임이론'이었다 [책마을]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는 초나라의 용장 항우. 진나라를 무찌른 그의 위용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지만 얼마 뒤 한낱 촌부였던 한나라 유방에게 천하를 빼앗긴다. 두 사람이 기원전 206년부터 4년 동안 중원의 패권을 놓고 다툰 이야기가 바로 <초한지>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최근 출간된 <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는 그 이유를 '게임이론'에서 찾았다. 게임이론 전문가인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13명의 '패배자'들이 잘못된 선택을 한 이유를 파고든다.

게임이론은 사람들의 '전략'과 '선택'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게임 참가자'가 획득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활용해 가장 유리한 방향을 제시한다. 두 명의 범죄자가 각각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다가 둘 다 낭패를 보는 '용의자의 딜레마'도 대표적인 게임이론의 사례다.

책은 항우가 '비협조적 게임' 원칙을 이해했더라면 역사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을 거라고 설명한다. 이 이론은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이 협력하는 이유는 희생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협력에서 오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항우는 부하들에게 포상을 너무 섣불리 내주는 실책을 범했다. '비협조적 게임' 논리에 따르면 사람들은 과거의 은혜는 쉽게 잊지만, 미래의 이익에는 발 빠르게 움직인다. 항우는 자신이 쥔 칼자루를 최대한 오래 움켜잡고 있어야 했다. 결국 항우의 측근들은 하나둘 유방의 편으로 돌아섰다.

유방은 어땠는가. 한 교수는 유방을 '게임이론의 대가'로 치켜세운다.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느릿느릿 논공행상하는 한편, 조금이라도 잘못을 범한 부하들은 가차 없이 숙청해버렸다. 공신의 수를 줄이고, 그 자리를 자신의 핏줄로 채웠다. 이후 유방의 한나라는 400여년 간 존속한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주목할 내용이 많다. 동서고금의 역사적 사례를 두루 만나볼 수 있다. 유방의 부하 한신이 토사구팽 당한 이유를 '백워드 인덕션(미래 결과를 예상해 현재 행동을 결정하는 역진귀납법)' 개념에서 찾고,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유를 '대리인 문제와 불완전 정보'로 설명하는 식이다.

복잡해 보이는 경제학 개념을 동원하지만,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역사 속 인물들의 선택과 결정이 오늘날 직장 생활과 닮았기 때문이다. '왜 내가 승진시켜준 부하가 내 뒤통수를 쳤을까'에 대한 답이 궁금하다면 항우의 사례를 떠올리면 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