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시대 편견을 깬다…방탕하고 쟁취하는 '암컷들'
풀이 무성한 마사이 라마 평원. 토피 영양 한 쌍이 뿔을 마주 걸고 사납게 대치한다.

이 경쟁자들은 암컷을 쟁취하려는 수컷이 아니다.

가장 좋은 정자를 차지하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암컷들이다.

동물의왕국에는 수컷은 능동적이고 저돌적이며, 암컷은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란 이분법적 프레임이 있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거의 모든 동물에서 수놈의 열정이 암놈보다 강하다"며 "반면에 암컷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수컷보다 덜 열심이다"라고 설명했다.

다윈에서 거슬러 내려와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도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라고 봤다.

루시 쿡이 쓴 '암컷들'(웅진지식하우스)은 다윈 시대의 편견을 전복하는 책이다.

영국 자연사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옥스퍼드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저자는 과거 생물학의 가부장적 프레임에 의문을 품고 암컷들의 진짜 모습을 탐구했다.

쿡은 "과거 성차별적 신화가 생물학에 도입되면서 동물의 암컷을 바라보는 방식이 크게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캘리포니아 호두 농장에서부터 하와이의 해안, 마다가스카르의 정글, 케냐와 북아메리카의 대평원을 탐험하며 암컷을 만나고 이들을 연구하며 진화를 재정의하는 연구자들을 조명한다.

쿡이 목격한 암컷들의 모습은 상상초월이다.

발정기에 수컷 다수와 하루 최대 100번까지 짝짓기를 하는 암사자도 있고, 분주히 바람피우는 붉은날개검은새도 있다.

황금무당 거미는 교미를 시도하는 수컷을 슬러시로 만들어 흡입해버리고, 귀여운 외모의 미어캣은 3~15마리가 씨족 사회를 이루며 번식의 80%를 우두머리 암컷 한 마리가 독점한다.

심지어 하와이의 앨버트로스는 일부일처성 새이지만, 3분의 1이 암컷과 짝을 짓고 사는 레즈비언 커플이다.

이 책은 동물의 모성에 대한 인식도 왜곡됐다고 지적한다.

동물의세계에서 암컷이 임신과 수유에서 풀려나면 자식에게 헌신하는 주체는 주로 아빠다.

염색독화살개구리 암컷은 생전 올챙이를 업는 일이 없다.

언제나 수컷의 몫이다.

저자는 진화생물학에서 이같이 다윈에게 반기를 드는 견해는 "이단임을 선언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암컷으로 태어나 어떻게 단순한 수동적 보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사로 살아가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암수는 사실상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훨씬 더 많다.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조은영 옮김. 49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