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겨내는 저항'의 예술…하이디 부허가 뜯어낸 과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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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난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개척한 사람은 언제나 있는 법. 스위스의 하이디 부허(1926~1993)가 그런 예술가였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첫 아시아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그의 전시엔 말랑말랑한 재료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단하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 과거의 것들을 깨부수고, 새롭게 나아가는 것들로 가득하다.
부드러운 재료로 사회에 저항

부허는 스키닝 기법을 통해 서재 등 남성의 공간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신사들의 서재 파르케트 플로어링’(1979)이 그렇다. 부허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서재를 2년에 걸쳐 스키닝한 후 46개의 조각으로 잘라낸 벽에 걸었다. 권위적인 공간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서재는 남성, 부엌은 여성의 공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깨뜨린 것이다.

말랑말랑…‘조각의 개념’을 깨다
부허의 작품이 재조명받는 건 그가 단순히 ‘해체’에만 머무르지 않아서다. 전시장 곳곳에 놓여있는 잠자리 날개, 조개껍질, 생선 비늘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두 부허가 즐겨 쓰던 소재다. 이들의 공통점은 반짝거린다는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문지윤 아트선재 디렉터는 “반짝인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인다는 건 흐르고 변화한다는 뜻”이라며 “부허는 이런 소재를 통해 권위의 해체를 넘어 변화를 추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대리석, 나무, 청동 등 딱딱한 조각과 달리 부드러운 스티로폼으로 만들어 누구나 작품을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전시에선 부허의 작품을 복제해 관람객이 입어볼 수 있도록 했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