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공무원 극단 선택 …"우리가 불만 하수구인가" 동료들 분통
고용노동부 신임 근로감독관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고용부 직장인협의회(직협)는 당국에 실질적인 재발 방지책과 구체적인 감독관 보호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A감독관은 지난해 30대 중반의 나이에 입사한 신입 근로감독관으로 알려졌다.

2일 수사 당국과 고용부 직협 등에 따르면 천안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 A씨는 지난 1일 오전 11시경 아산시 인주면의 한 공영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출근도 하지 않고 연락이 안 된다'라는 동료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휴대폰 위치 추적 끝에 시신을 수습했다. 외상 등 타살 혐의점은 없었다.

현장에서는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2일 오전 A씨가 머물던 관사에서 2건의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용부 관계자는 "가족 외에 동료들에게도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따로 남겼다"고 전했다.

A 감독관은 다수의 신고사건을 처리하는 도맡고 있었고, 해고예고 수당과 관련한 수사를 진행하던 도중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사실도 밝혀졌다.

임주영 직협 의장은 2일 고용노동부 공무원직장협의회 게시판에 올린 게시글에서 "신규 감독관의 사망 소식에 모든 직원이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근로감독관들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임 의장은 "2019년 1월에는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추가되면서 근로감독관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상상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우리 부가 민원인의 불만을 받아내는 하수구인가 싶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악성 민원을 견뎌야 하는 대상으로 치부하는 대책도 이제 그만 보고 싶다"며 "우리도 상식적인 민원인만 응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죽음 부른 악성민원인...엉성한 법률도 문제

임 의장은 이 글에서 "도대체 어디까지를 괴롭힘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도 객관적으로 가늠되지 않는데 이를 혼자서 조사하고 판단하고 민원을 감당해야 하는 감독관은 무슨 죄인가"라고 지적했다.

임 의장의 지적처럼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수사는 고용부 근로감독관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애매한 규정 탓에 수사나 판단 자체가 어렵고 수사 과정에서도 악성 민원인을 만날 확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직장에서의 지위·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없는 것이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간한 ‘직장 내 괴롭힘의 허위 신고 실태와 과제’ 보고서에서 "괴롭힘 처벌 조항을 보유한 국가(한국, 프랑스, 노르웨이, 호주, 루마니아, 버뮤다 등) 중 한국만 유일하게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허위신고자에 대해서는 처벌 규정이 전혀 없으며, 이 과정에서 근로감독관을 보호해줄 수 있는 장치도 없다.

이런 현실에 업무 과중까지 맞물리면서 퇴사를 선택하는 젊은 고용노동부 직원들의 숫자도 늘고 있다.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용부 임용 이후 재직 5년 미만인 고용부 직원이 의원면직(자발적 사직)을 선택한 숫자는 2017년 143명에서 2021년 243명으로 4년 만에 70%(100명)나 급증했다.

고용부의 한 근로감독관은 "신규 감독관이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감독관들이 처한 어려움과 현실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