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 로고 / 사진=에코프로
에코프로 로고 / 사진=에코프로
올해 들어 2차전지 기업 에코프로의 주가와 실적 상승세가 거세다. 투자 시장에선 이 회사의 이동채 회장을 빗대 '이동채 매직'이라는 단어도 들린다. 전기차 산업 성장과 국내 신규 증설 라인 가동이 본격화하면서 양극재 판매량이 급증한 덕에 올해 에코프로비엠의 매출 10조원 달성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에코프로비엠 올해 매출 '10조 클럽' 가능성

2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에코프로비엠의 올해 매출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8조9891억원이다. 지난해 매출(5조3576억원)보다 67.8% 높다. 이 회사는 최근 잠정 실적 공시에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61.3% 증가한 1073억1500만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액은 203.5% 증가한 2조105억8600만원에 달했다. 일부 증권사는 올해 에코프로비엠이 매출 '10조 클럽'에 가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BNK투자증권은 에코프로비엠의 매출을 10조1220억원으로 예상했다.

에코프로비엠은 배터리 4대 소재 중 하나인 양극재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지난해 기준 매출의 99.7%가 양극재에서 나왔다. 주력 제품은 하이니켈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와 NCM(니켈·코발트·망간) 양극재다. 주요 고객사는 배터리 제조업체 삼성SDI와 SK온이다.

매출 증가의 원동력은 전기차다. 전기차 판매가 늘면서 매출은 2020년 8547억원에서 2021년 1조4856억원으로 73.8% 뛰었다. 지난해엔 전년 대비 3배 이상 뛰었다. 양극재 연산도 상승세 요인으로 꼽힌다. 2020년말 6만t에서 이듬해 7만2000t으로 늘었다. 지난해말 기준 18만t까지 확대됐다.
이동채 에코프로그룹 회장
이동채 에코프로그룹 회장
증권사는 올해 본격적인 가동에 돌입하는 신규 증설라인에 주목하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은 충북 오창(3만t)과 경북 포항(15만t)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그중 최근 포항에 증설한 CAM5N(3만t)과 CAM7(5만4000t)이 풀가동에 돌입하면 매출 상승세는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에코프로와 에코프로에이치엔도 동반 상승세다. 에코프로는 잠정 실적 공시에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33.2% 증가한 1795억9800만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202.5% 증가한 2조589억1800만원을 기록했다. 에코프로에이치엔은 1분기 영업이익 119억58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48.9%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594억9600만원으로 179.5% 증가했다.

주가도 폭등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월2일부터 지난 19일까지 에코프로는 460%, 에코프로비엠 214%, 에코프로에이치엔은 56% 상승하는 등 에코프로그룹주가 초강세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2차전지 업체들이 수혜를 볼 것이란 기대감이 주가를 밀어 올렸다.

야간대학 나와 양극재 뛰어든 이동채 회장의 '뚝심'

에코프로를 이끄는 이 회장이 처음부터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니다. 그는 경북 포항의 한 시골집에서 1남 7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대구상고를 졸업한 그는 주택은행 은행원으로 취직해 영남대를 야간으로 다니며 꿈을 키웠다. 하지만 은행은 대졸 학력을 인정받으려면 퇴사 후 재입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이 회장은 은행을 그만두고 삼성에 입사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업무에 퇴사한 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1984년부터 6년간 회계법인에서 일했다.

늘 그의 마음속에는 창업에 대한 꿈이 있었다. '1만명을 먹여 살리는 기업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1996년 모피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곧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쓴맛을 봤다. 그러다 1997년 우연히 '교토의정서' 체결 뉴스를 접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글로벌 산업이 구조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직감했다. 이 회장은 1998년 자본금 1억원으로 서울 서초동 골목에 33㎡(10평)짜리 사무실을 얻고 코리아제오륨을 창업했다. 화학흡착제와 탈취제 등 대기환경 분야 아이템이 주 사업이었다. 직원은 이 회장을 포함해 단 두 명에 불과했다.
이동채 에코프로그룹 회장(왼쪽 두번째)이 2010년 직원들과 함께 2차전지 재료인 Ni계 양극 소재 생산시설을 점검하는 모습 /사진=신경훈 기자
이동채 에코프로그룹 회장(왼쪽 두번째)이 2010년 직원들과 함께 2차전지 재료인 Ni계 양극 소재 생산시설을 점검하는 모습 /사진=신경훈 기자
그로부터 3년 후 사명(社名)을 에코프로로 바꿨다. 생태계와 자연, 환경을 의미하는 에코(ECO)와 △친하다·찬성하다(Pro) △보존하다(Protect) △번영시키다(Prosper) △계획하다(Project) △전문가(Professional)의 뜻을 담은 '프로(PRO)'를 결합해 만들었다. '기술을 통해 자연환경을 인간에게 친밀하도록 보호하고 번영시키며 새로운 창조를 계획하는 전문가 집단'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에코프로비엠의 'BM'은 '배터리머티어리얼즈(Battery Materials)'의 약자다.

사명을 바꾼 뒤 회사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촉매·흡착제와 케미컬필터 개발에 연이어 성공하며 친환경 벤처기업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특히 촉매흡착제는 반도체 클린룸에서 생기는 암모니아, 아황산가스 등 화학성분을 흡착 제거하는 소재로, 이를 응용해 만든 케미컬필터는 첫 국산화 제품인 만큼 회사의 주력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2004년 10월엔 정부가 주도해 만든 '미래성장동력-초고용량 리튬2차전지 개발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이때 제일모직과 공동으로 양극재 원재료가 되는 전구체 사업을 시작했다. 2006년엔 제일모직이 전구체뿐 아니라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양극재 기술과 영업권을 인수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당시 양극재는 노트북, 공구 등 배터리 수요가 한정적인 탓에 성장성이 높은 사업으로 보지 않았다. 제일모직도 같은 이유로 사업을 접었다. 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 양극재는 필수 제품이 될 것이라 판단했고 고민 끝에 양극재에 뛰어들었다.
에코프로비엠 공장 내 양극재 생산 시설
에코프로비엠 공장 내 양극재 생산 시설
2007년 사업을 넘겨받은 뒤 1년도 되지 않아 니켈계 양극소재 40t과 전구체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준공됐고 양극소재 제1공장까지 문을 열었다. 수익을 내기까지 10년간 적자를 버텼다. 이 회장은 수익을 내지 못하고 투자만 해야 하는 이 시기를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에겐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이제 전기차 시장이 커지고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며 양극재는 없어서 못 파는 소재가 됐다. SK이노베이션과의 10조원대 계약은 이 회장이 10평 사무실에서 기업을 일군 지 23년 만의 결실이었다.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 도래 시 양극재 수요 폭증"

에코프로비엠은 계열사 에코프로이노베이션과 에코프로머티리얼즈로부터 각각 수산화리튬과 전구체를 매입해 양극재를 생산한다. 전구체는 양극재 원료로 니켈·코발트·망간 등으로 생산된다. 전구체에 리튬을 결합하면 배터리 4대 소재 중의 하나인 양극재가 된다. 최근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광물 보유국들이 자원을 '무기화'하는 상황에서 에코프로그룹의 수직계열화는 또 하나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에코프로비엠 청주 본사
에코프로비엠 청주 본사
다만 주가가 과열 현상을 보인다며 '매도' 의견을 담은 종목분석 보고서가 나온 점은 변수다. 하나증권과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의 주가가 과도하다며 이례적으로 매도 의견을 낸 보고서를 발간했다. 증권가에서 매도 리포트는 흔치 않다. 지난해에 증권가의 투자 의견이 반영된 총 1만4159건 중 매도 리포트는 6건에 불과하다. 매도 의견이 나오면 주가가 하방압력을 받고 중장기적으로 조정을 거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에코프로 관계자는 "2차전지 시장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했을 뿐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 양극재 수요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날 것"이라며 "회사 이름 대로 기술을 통해 자연을 보호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