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클럽 동호인 출신들…학원·화물·배송 등 생업 잠시 중단
"인생에 꿈 심는 터닝포인트"…22일부터 강릉 시니어 세계선수권 출전
빗질 따라 하다 국가대표까지…평균연령 56세 컬링팀의 무한도전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요.

"
이달 22일부터 시니어 세계컬링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국가대표팀 'K-시니어'의 최종경(66) 씨는 왼쪽 가슴팍에 달린 태극마크가 어색하다는 듯 쑥스럽게 웃었다.

말로만 듣던 진천선수촌에 이달 초 입소한 뒤 TV에서만 보던 양궁 안산, 김제덕 선수를 두 눈으로 보면서 '내가 진짜 국가대표가 됐구나'하며 실감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K-시니어 선수들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클럽에서 삼삼오오 모여 취미로 컬링을 하던 동호인들이었다.

함영우(55) 씨는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컬링을 처음 알게 됐고, 당시 근무하던 백화점 청소 시간에 빗자루로 스위핑 동작을 따라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다른 선수들도 학원, 화물 운수, 자동차 부품 배송 등 각자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컬링을 병행해왔다.

그러던 중 50세 이상이 출전하는 시니어 대회 대표팀을 뽑는다는 소식에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선발전에 나갔는데 덜컥 붙은 것이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에 잠시 고민이 됐지만, 컬링을 향한 열정 하나로 브룸(브러시)을 들게 됐다.

천인선(55) 씨는 18일 경기도 의정부컬링장에서 가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저희 나이대에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다.

주변에서도 기뻐한다"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씨가 "생활비를 갖다주지 못하는 걸 감수해준 집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옆에서 듣던 동료 선수들도 경쟁적으로 아내에 대한 마음을 표현해 현장에 웃음이 퍼지기도 했다.

빗질 따라 하다 국가대표까지…평균연령 56세 컬링팀의 무한도전
사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해외 팀과 경쟁해 성적을 낸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과정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대표팀에 선발된 뒤 스포츠클럽에서 자체적으로 훈련에 들어갔고 올해 2월부터 정장헌(43) 국가대표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다.

이달 초에는 진천선수촌에 입소했다.

나이도 있는 데다 운동 기초가 부족하다 보니 지금도 관절, 근육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나이 먹고 하려니까 너무 힘들다.

다들 무릎이 아프다"는 신만호(53) 씨는 "운동은 젊었을 때부터 차근차근 밟아서 해야 하는 것 같다.

국가대표 하시는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얼음 위의 체스'로 불릴 만큼 전략 싸움이 중요한 종목이기에 작전을 공부하느라 머리를 꽁꽁 싸매야 하기도 했다.

특히 팀의 전략을 결정하는 '스킵'을 맡은 천씨는 단체 훈련이 끝나고도 경기장에 남아 추가 훈련을 해야 했다.

천씨는 "초등학교 때 이후로 나머지 공부는 처음이다"라며 "몇 달 사이에 머리가 엄청 빠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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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투정할 때도 그들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고 눈빛에서도 컬링에 대한 설렘과 즐거움이 느껴졌다.

이번 대회가 황혼기에 접어든 인생을 다시 한번 힘차게 살아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천씨는 "그동안 일을 하면서 쉬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일과 집의 반복이었다"며 "이번이 저한테 꿈을 심어주는 계기이자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해보면서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팀 최연장자인 최씨도 "컬링을 시작하고 일상에서 지인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며 "이런 기회를 잡은 게 천운이다.

나 같은 사람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자부심을 비쳤다.

막내 허정욱(51) 씨는 컬링을 좋아하는 이유로 "컬링은 인생이다.

우리의 인생이 뜻대로 잘되지 않는 것처럼 컬링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하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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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친 K-시니어는 의정부 송현고등학교 선수들과 연습경기를 치렀다.

"둘, 셋, 화이팅!"을 외치고 빙판에 올라선 이들의 표정에는 어느새 진지함이 묻어났다.

표적판(하우스)에 스톤을 보내고, 라인을 읽고, 스위핑을 하는 모습에서 인터뷰 때의 천진난만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훈련을 지켜보던 정찬헌 코치는 "역시 어른들이셔서 훈련에 책임감을 갖고 임하신다"며 "나도 저렇게 무언가에 도전하며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K-시니어의 '무한도전'은 오는 22일부터 8일간 강릉하키센터에서 펼쳐진다.

/연합뉴스